[박재일 칼럼] 대구시장의 조건과 대구적 가치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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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4   |  발행일 2018-02-14 제31면   |  수정 2018-02-14
[박재일 칼럼] 대구시장의 조건과 대구적 가치

후배 기자에게 물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대구시장이 됐으면 좋겠느냐고. 대답이 인상적이다. ‘아주 독한 사람이 됐으면 한다.’ 학연·지연 그런 거 다 끊을 수 있는 인물이 나와야 대구가 확 바뀐다고 했다. 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랫동안 출입하고 또 관찰한 입장에서 보면 대구시장 자리는 굉장히 어렵다. 건설·경제 등 한정된 분야가 아닌 종합행정의 사령탑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업무는 중앙정부 장관의 업무영역과 모조리 중첩된다. 심지어 국방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시장은 지역 방위사령관이다. 축구로 치면 ‘올 라운드 플레이어’여야 한다. 호평을 받는 시장이 나오기 힘든 배경이다.

그렇다면 대구시장은 도대체 어떤 조건의 인물이 돼야 할까. 나는 세 가지를 꼽고 싶다. 열정과 조예, 그리고 동어 반복 같지만 정치력이다.

칼 마르크스와 견준다는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강연 저서를 통해 정치인의 덕목·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로 열정(passion)이다. 국가적 혹은 지역에 대한 사명감, 뭔가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말한다. 나는 이것을 정치인의 내재적 에너지로 보고 싶다. 대충 자기 이력서 하나에 첨가하고, 그냥 선거운동으로 당선되고, 아랫사람을 입으로 부려서 업무하는 그런 인간은 정치인의 요건에서 탈락이란 뜻이다. 예를 들면 3선의 윤순영 중구청장이 대구 동성로의 노점상을 철거했는데, 그건 열정과 신념의 소산이다. 물론 베버가 말한 대의(大義)와 악마적 유혹을 물리칠 윤리가 수반돼야 한다.

둘째, 조예(造詣)는 오랫동안 나름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신이 아닌 이상 일개 정치인이 종합행정의 그 모든 분야를 다 관장할 수는 없다. 서울·부산을 비롯한 국내 대도시뿐만 아니라 세계를 둘러봐도 한 도시의 시장이 그 도시를 이룩했다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듯이. 그렇다면 남는 것은 종합행정에서는 최소한의 판단능력을 갖는 대신 자기만의 조예를 가진 분야를 개척하고 밀고 나가야 한다. 그게 대구미술이든, 전선 지중화든, 대구기계의 세계화든, 도시 모든 보도블록의 디자인화든 시장 스스로 이에 대한 열정과 조예가 있을 때 결과는 훌륭하다.

역대 대구시장 중 걸출한 인물로 꼽히는 이가 이상희 전 시장이다. 대구의 공원이나 가로수, 신천대로 등 핵심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고 완성한 인물이다. 건설교통부 장관도 역임했다. 오래전에 그와 장시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신천대로 중 대백프라자 인근이 가장 잘 만들어졌는데 행여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이 전 시장의 답은 예산도 없었지만 후임 시장들이 신천대로를 포기할까봐 이곳과 반대편 침산동 쪽 두 군데만 공사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놓으면 연결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원래 신천대로는 8차로인데 반대가 심해 4차로로 줄였다고 했다. 칠성시장 쪽은 시장을 일부 옮기고, 고가 아닌 지상이나 지하로 구상했지만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무나 꽃에 대해서는 진짜 박사다. 조예가 깊다. 작금의 대구시내 나무나 꽃의 상당 부분은 그의 생각과 전문성에서 비롯됐다.

대구시장은 정치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여전히 중앙집권적 시스템이다. 또 대도시는 정치적 성향이 각기 다른 시민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 복잡한 권력관계 속에서 최대 공약수를 찾는 작업이 지방정부 장관(시장)에게 주어진 책무다. 예를 들면 집권세력이 바뀐 지금, 여당 시장이 되면 중앙정부에 대구의 몫을 거침없이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야당 시장이 되더라도 마찬가지로 당당히 대구의 플랜을 내놓고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겸비해야 한다. 물론 어렵다. 그건 마치 마키아벨리가 얘기하듯 여우 같은 지혜와 사자 같은 힘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조건의 밑바탕에는 ‘대구적 가치’가 깔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구 정체성이자 대구에 대한 자부심이다. 올림픽에서 보듯 한국적 가치에 세계는 환호한다. 마찬가지로 대구의 역사적·공간적 가치를 알아야 한다. 단순히 대구에 오래 살았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대구의 골목과 동네, 신천과 금호강의 물결을 내 숨결처럼 느낄 때 시장은 비로소 자격을 갖춘다.
박재일기자 park1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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