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효자반납시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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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4   |  발행일 2018-02-14 제30면   |  수정 2018-02-14
효자 만능의 시대가 가고
부모 봉양마저 어려워진
효자 반납 세상으로 진입
다양한 간병비 현실화 등
차세대 복지대책 절실
[동대구로에서] 효자반납시대

이젠 ‘잘 죽기 어려운 세상’. 자연스럽게 ‘멸종·용도폐기 수순’을 밟는 존재가 있다. 바로 ‘효자(孝子)’다.

그 시절 ‘효행은 만사의 근본’ ‘군사부(君師父)의 존엄’을 위해 모든 가치가 존재했다. 그땐 ‘직장부재’시대였고 부자(父子)는 고향에서 동고동락하다가 선산에 함께 묻혔다.

어느날 ‘효자만능시대’로 접어든다. 부모가 위중하면 사직(辭職)하고 즉시 귀향했다. 병원도 약국도 없던 때라 효자는 의사와 간병사를 겸했다. 부모가 먹고 싶다고 하면 한겨울에도 수박 찾는 시늉을 했다.

백성의 영양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였다. 예순 넘기기조차 버거웠다. 와병에서 사망까지, 그 시간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았다. 지금처럼 10년 이상 장기 투병하는 노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부모도 자연스러운 임종을 위해 막바지에는 곡기(穀氣)를 끊어버렸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가장 쉬운 게 ‘죽음’이요 가장 어려운 게 ‘삶’이었다.

우린 오래 ‘부효자효(父孝子孝)’시대를 봉행했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효자였다. ‘자식 양육’이란 적금을 부은 부모는 노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훗날 ‘봉양’이란 원금을 확실하게 돌려받는 탓이다. 덕분에 ‘조선발 효자시스템’은 1970년대까지 무사행진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젠 양육뿐이고 봉양은 없다. 부동산투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어느날 고향집조차 투기 대상으로 전락한다. 믿었던 효자들도 점차 ‘꾼’으로 추락해버렸다. 부모 위상도 백척간두, 효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가문·가족의 영광보다 ‘황금’이 더 절실해진 탓이다.

출세를 위해 모두 고향을 등졌다. 잘난 자식일수록 고향과 멀어졌고, 결국 못난 자식이 효자를 대행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 형제애도 꽁꽁 얼어붙을 수밖에. 그럴수록 부모의 자리는 더 고독해져갔다. ‘예전에는 못난 자식도 잘난 자식도 없었는데….’

‘긴 병에 효자가 없다’고 했다. 치료·간병비를 감당못해 거리로 나앉게 되는 자식도 생겨날 수밖에. 성공한 그 잘난 자식이 부모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고작 ‘지상 최대 빈소 꾸미기’.

이젠 직계비속이 더 ‘상전’이다. 손자가 가장 서열이 높다. 수재일수록 집안 일에서 면탈된다. 손자의 재롱이 간절하지만 공부 때문에 며느리는 서둘러 아이와 함께 일어선다. 스마트폰에 빠진 손자도 더 이상 조부모한테 매달리지 않는다. 부모 봉양시대가 아니다. ‘자식 봉양시대’로 굳어지고 있다. 부모도 이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병들고 호주머니가 비어갈수록 ‘노독(老獨)’은 더욱 처참해진다.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부모가 쓰러졌다.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5년 갈지 10년 갈지 장담도 못하는 상태. 천정부지의 치료비란 놈이 한 집안을 초토화시킬 태세다.

원해도 부모는 집에서 임종하지 못한다. 장례식장에 이르는 전과정을 의사·간호사가 진두지휘한다. 이때부터 환자는 의료기관 먹여살리는 ‘봉’이 된다. 돈이 바로 ‘효심’이 되고만다. 돈 없으면 효자도 불효자로 전락할 수밖에.

예전에는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감당할 수 있는 상호부조시스템이 씨족사회 안에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각자도생이다. 직장도 부모의 긴병을 도와주지 않는다. 다들 일에 포로가 돼 있다. 자식의 성공과 부모의 긴병이 대립할 경우 긴병이 양보할 수밖에 없다. 그 자리를 파고든 ‘신효자(新孝子)’가 있으니, 그가 바로 ‘간병사’다. 그래서 세상은 ‘효자반납시대’.

불효자는 간병사한테 큰절 해야 된다. 만약 그들이 없다면 감내해야 될 봉양의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젠 효자를 강요할 수도, 될 가능성도 없다. 그래서 무례한 간병사의 전횡 역시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할 것이다. 간병비 현실화 등 차세대 ‘간병복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아무튼 평균 100세시대, ‘참 잘 죽기 어려운 시절’이다.

이춘호 주말섹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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