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재난대비를 위한 투자는 바로 복지다

  • 장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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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3   |  발행일 2018-02-13 제30면   |  수정 2018-02-13
재난 대비는 국민복지 인식
숙련된 소방 인력과 장비는
정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국회 소방법 지연개정 반성
집단 기억상실증 치유해야
[화요진단] 재난대비를 위한 투자는 바로 복지다

지난 1월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2008년 40여명이 숨진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이후 10년 만의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현재까지 무려 48명이 숨지고 부상자가 144명이다. 지난해 12월21일 29명이 숨진 제천화재참사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밀양화재참사 원인은 스프링클러 미비와 자동방화문 미설치, 불법증축 등으로 모아지고 있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제천화재참사와 화재원인이 유사하다. 밀양 참사는 환자 결박으로 인한 구조지연과 화재나 정전시에 중환자를 보호하는 무정전시스템 미비가 추가됐다.

재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방재(防災)와 구조다.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각종 안전 설비를 갖추는 방재가 우선이다. 그렇지만 이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참사가 생긴 것이다. 지난 3일 발생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화재의 경우 스프링클러와 방화벽 자동작동에다 평소 재난대피훈련 등으로 인명피해가 없었다고 치켜세우지만 실제로 방재에는 소홀했다. 본관 3층 식당가 피자가게 화덕에서 발생한 500℃의 불씨가 환기구 내부로 유입되면서 켜켜이 쌓여 있던 기름찌꺼기에 옮아붙었다고 한다. 병원과 소방당국은 불법은 아니더라도 사전에 예방조치를 해야만 했다.

우리는 재난에 대비한 시설 투자를 경비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각종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줄이려고 한다. 그러나 인명피해가 생긴다면 건물주는 패가망신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밀양화재참사와 제천화재참사에서 알 수 있듯이 건물주들은 예외없이 검찰에 구속됐다. 앞으로 제기될 천문학적인 피해배상을 어떻게 감당할지. 오히려 과감한 투자가 자신에겐 보험이자, 고객을 위한 안전장치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난에 대비한 투자는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복지라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방재를 잘하더라도 사고는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재난이 발생했을 때 기민한 대처 등으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바로 구조다. 이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숙련된 소방인력 확보가 관건이다. 미국의 예를 보자. 본토가 속절없이 뚫린 2001년 9·11테러 당시 엄청난 민간인 인명피해만 생각하지, 실제로 이들을 구하러 건물에 들어갔던 수많은 소방관의 희생은 기억하지 않는다. 뉴욕시내 2개 소방서 인력이 사라졌다고 한다. 뉴욕시로선 신규 채용된 소방관을 화재 전문가로 조기육성하는 게 당면과제였다. 뉴욕시는 소방전문가 등이 모여 화재 진압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해 반복훈련을 시킨 결과 조기에 인력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도 해마다 수천명의 소방 신규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소방력이 법정기준에 근접하고 나름대로 대형화재 및 재난 대응노하우가 갖춰진 특별시와 광역시는 논외로 치더라도 제천이나 밀양처럼 소방력이 법정기준의 절반 수준에다 신규소방관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도단위에선 뉴욕시의 예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9일 소방의 날을 맞아 삼성전자 임직원과 벤처기업이 개발한 ‘소방관용 저가형 열화상 카메라’ 1천대를 기부했다고 한다. 전국 소방파출소별로 1대꼴이다. 선의로 행한 대기업의 기부행위를 곡해할 의도는 없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를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현대식 소방장비를 구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국회도 소방법 개정안을 몇해째 묵히고 있다가 대형 참사가 이어지자 급행으로 통과시켰다. 무책임의 극치라는 비난을 따갑게 들어야 한다.

화재참사의 경우 유독 가스로 인한 질식사가 사망피해의 대부분이다. 방연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물을 적신 수건을 사용해야만 참화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재난이 발생하면 온나라가 들끓다가도 곧 잊어버린다. 혹여 노란색 민방위 점퍼를 입고 재난현장에 나타나는 총리나 장관의 모습만 기억하는 것은 아닌지. 집단 기억상실증을 치유하지 않는다면 참화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장용택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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