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닥터 둠의 저주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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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0   |  발행일 2018-02-10 제23면   |  수정 2018-02-10

‘닥터 둠(Dr. Doom)’은 경제 전망을 부정적으로 예견하는 경제비관론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둠’은 파멸·불길한 운명을 뜻한다. ‘내일의 금맥’ 저자인 미국 투자전략가 마크 파버가 1987년 뉴욕 증시 대폭락을 예측하고 고객들에게 보유주식을 현금화할 것을 권유하면서 별칭이 처음 붙었다. 이후 닥터 둠은 국제금융계에서 좋지 않은 상황이 오는 것을 예견하는 사람을 부르는 통상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해 주목받은 미국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도 대표적인 닥터 둠으로 꼽힌다.

최근 가상화폐의 가치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닥터 둠의 비관적인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루비니 교수는 지난 6일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은 내재가치 또는 교환가치가 없다”며 “버블이 꺼지면 결국 가격이 제로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의 글로벌투자연구 부문 책임자인 스티브 스트롱인도 보고서를 통해 “지금의 암호화폐들은 새로운 유형의 미래 화폐들이 등장하면서 모두 가치를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닥터 둠 3인방 중 한 사람인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연구원도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투자자들에게 독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닥터 둠이 권하는 안정적인 투자 대상은 뭘까. 루비니 교수는 지난달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블록체인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인공지능(AI),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핀테크 기업에 투자할 것을 조언했다. 그는 핀테크에 투자하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더 똑똑한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조 닥터 둠 마크 파버는 “사이버 공격 앞에서는 가상화폐도 은행예금도 안심할 수 없다”며 안전자산으로 금을 반드시 보유하라고 충고한다.

흔히 투자거품 붕괴를 설명할 때 미국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가 창안한 모형을 거론한다. 거품 붕괴 과정을 ‘대체-호황-도취-금융경색-대폭락’ 다섯 단계로 나눈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가상화폐 대장격인 비트코인이 금융경색 단계에 상당히 근접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금융경색 단계는 투자자들이 기술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차익실현을 하는 단계다. 이 단계를 지나 대폭락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제도권에 안착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선택과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지금의 국내 상황을 보면 닥터 둠의 경고가 왠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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