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밀양 산내면 한천 테마파크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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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9   |  발행일 2018-02-09 제36면   |  수정 2018-02-09
‘육지’로 올라온 ‘바다’…투명한 속살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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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산내면의 한천 건조장. 11월에서 2월까지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한천이 만들어진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밀양한천 판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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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박물관. 가운데 둥근 홀을 중심으로 왼쪽에 체험실, 오른쪽에 전시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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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박물관 내부. 가운데 한천 제조에 쓰이는 도구들이 전시돼 있고 벽을 따라 역사와 쓰임새 등이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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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한천체험관. 과일젤리와 양갱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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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박물관에서 한천의 제조과정을 모형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바다의 풀이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의 땅에 누워 있다. 파란 물속에서 붉은 몸을 흔들던 풀이 지상으로 올라와 불을 만나고 사람의 손을 거쳐 차가운 바람 아래 뉘어진 게다. 그리고 이제 별도 얼어버린 밤과 매일 지치지 않고 달려오는 태양의 낮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긴다. 그러는 동안 그는 점점 가벼워지고 눈꽃처럼 살얼음처럼 투명해진다. 그러한 모습으로 여기 도처에 누운 그 한천이다.

산내면 한천 밭
제주 해녀 채취 우뭇가사리가 원료
끓이고 굳힌 우무 잘라 말리면 한천
일교차 크고 일조량 많아 최적 조건
축구장 20개 넓이 건조장 동양 최대

한천 테마마크
박물관·판매장·전시실·식당 갖춰져
과일젤리·양갱 등 직접 만들기 체험
한천 첨가 다양한 요리 맛볼 수 있어


◆ 밀양 산내면의 한천 밭

밤새 얼었던 몸이 나른해진다. 지금은 많이 말라 조그만 바람에도 휘 날린다. 노란 플라스틱 건조틀로 눌러 놓았지만 바람의 난동을 이겨내기는 어렵다. 겨울 논 위에 하얀 한천들이 꽃잎 마냥 떨어져 있다. 한천은 콩국에 넣어 먹는 말랑한 그것이라 생각하면 쉽다. 이따금 샐러드 속에 투명하게 숨어 있다가 미역 줄기 마냥 쫄깃하게 씹히는 그것이기도 하다. 양갱이나 젤리의 원료로도 쓰인다. 좋은 한천이 되려면 일교차가 커야 한다. 일조량도 많아야 한다. 그렇게 하늘이 허락해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한천(寒天)이다.

한천의 원료는 우뭇가사리다. 제주도 청정 해역에서 해녀들이 채취한 붉은 빛깔의 해초다. 5월과 6월 딱 두 달간 그녀들이 따 올리는 우뭇가사리는 우리나라 전체 수확량의 80%. 일본의 전체 수확량보다 3배가 많다고 한다. 우뭇가사리를 끓이면 진득한 액으로 변한다. 그 액을 통에 담아 굳히면 탄탄하고 탱글탱글한 묵이 된다. 우무 묵, 제주에서는 우미라 한다. 콩국에 넣어 먹는 그것이 바로 우무다.

우무를 잘라 말리면 한천이 된다. 벽돌 모양으로 잘라 말리면 각 한천, 국숫발처럼 뽑아 말리면 실 한천이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빈 논에 대나무를 엮어 세운 건조장이 만들어진다. 2모작인 셈이다. 11월 말에서 2월 중순까지 우무는 차가운 바람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한천으로 변모해 간다. 대관령의 황태와 비슷하다. 그동안 100~200명 정도의 일꾼이 한천 밭에서 일한다. 이곳 농부들에게 농한기는 없다. 한밤에 나와 얼음을 쳐 주기도 한다. 우무 위에 살얼음을 덮어주어 조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 완성은 자연에게 맡기고 농부들은 인내한다.

밀양 산내면(山內面)은 이름처럼 산 속의 마을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서남쪽만 좁게 트여 있는 호리병 모양의 분지 땅으로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도 풍부하다. 면의 중앙으로는 동천(東川)이 흐른다. 면의 북쪽 구만산 계곡 아래 동천 변에 펼쳐진 양촌마을의 논은 겨울이면 한천 건조장이 된다. 산 아래 천변의 좁은 경지가 죄 한천 밭이니 오히려 가없다.

◆ 한천 테마파크

한천 밭 곁에는 한국 한천산업의 개척자인 야옹(野翁) 김성률(金成律) 선생의 송덕비가 있는 ‘한천송덕비공원’이 있다. 국내 한천산업인들이 뜻을 모아 2001년 조성한 곳으로 주변으로 작은 연못과 정자가 있는 소공원이다. 밀양은 1913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한천공장이 세워진 곳으로 한천 역사가 100년 이상이다. 현재 밀양에서 자연 한천을 생산하는 곳은 ‘밀양한천’. 1941년에 설립돼 7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실제 산내면의 한천 건조장은 축구장 20개쯤 되는 넓이라 한다. 이곳에서 전국 생산량의 90% 이상 연간 300t 정도의 한천이 생산되며 그중 80%는 일본에 수출한다. 동양 최대의 생산능력이다.

밀양한천은 2016년 동천 변에 한천박물관과 한천 판매장, 식당 등으로 구성된 한천테마파크를 열었다. 박물관은 작고 알차다.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우뭇가사리가 가득 담겨 있는 커다란 솥이 보인다. 우무묵의 원료인 우뭇가사리를 끓이는 가마솥으로 자숙(煮熟)솥이라 부른단다. 삶아서 익힌다는 뜻. 1961년부터 94년까지 양산 소토한천에서 사용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왼쪽에는 밀양한천 체험관이 있다. 과일젤리와 양갱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곳이다. 평일 체험은 일주일 전에 예약하고 주말에는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접수하면 된다. 그러나 평일 날 예약 없이도 체험을 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있는걸 보아 융통성 있게 방문객들을 대하는 모양이다.

오른쪽은 전시실이다. 입구에서 전체가 보일 만큼 소규모다. 중앙에는 묵통, 건조대, 얼음을 칠 때 쓰는 칼, 각 한천용 절단 칼 등 한천을 만드는데 쓰이는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벽을 따라 한천의 발견과 한천의 쓰임새, 한국한천산업의 발자취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읽을거리가 많아 제법 시간이 걸린다. 앞서 한천에 대해 이야기한 것들은 모두 여기서 배웠다.

한천의 본국은 일본이라 한다. 1657년 어느 겨울날 일본의 도진이라는 지방 군주가 에도로 가는 도중에 교토에 있는 여인숙에 하룻밤을 묵게 된다. 집주인은 벼슬 높은 사람의 숙박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여러 가지 요리를 대접했다. 그중에 우뭇가사리를 고은 음식인 삼태가 있었다. 집주인은 먹고 남은 삼태를 문밖에 내버려둔 채 잊고 있었는데,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기를 여러 날 되풀이하다 결국 무를 건조시킨 말랭이처럼 바짝 마른 상태가 되더란다. 한천은 우연과 관찰의 산물이다.

박물관과 마주보고 있는 2층 건물은 한천 판매장과 식당이다. 생산지의 판매장이 이처럼 잘 되어 있는 곳이 드물다 싶다. 한천과 요리에 필요한 간단한 도구들, 다양하게 구비된 양갱 선물세트, 오만 종류의 젤리들이 판매대 위에서 유혹한다. 포장 디자인에도 신경을 쓴 모양이 역력하다. 판매원들의 당당한 자부심은 방문객의 기분까지 좋게 한다. 한천의 미덕은 칼로리가 거의 없고 식이섬유가 풍부하다는 것. 디저트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다이어트 식품이 각광받는 요즘은 공급량이 달릴 정도로 인기가 있단다. 두 손이 무거워졌다.

2층은 식당으로 한천이 첨가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한천은 별 맛이 없고 투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요리로 개발 가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밀양한천은 그러한 잠재력을 실제 상품화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 개발 중이다. 판매장과 식당이 보여주는 것은 밀양한천의 진행 중인 미래다. 식당에서 한천 밭이 내려다보인다. 가지런한 자세로, 하늘과 마주한 투명한 얼굴들이, 부풀었다가 오므라드는 폐처럼, 잠잠한 고동 속에 있다. 벌써 2월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로 나가 오른쪽 24번 국도(밀양대로) 언양 방향으로 간다. 산내면행정복지센터 이정표를 따라 산내면소재지로 들어서면 산내면사무소사거리 좌회전 지점에 밀양한천 입간판이 있다. 봉의교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에 한천박물관 등이 보인다. 박물관 앞들이 모두 한천 밭이다. 산내면사무소 뒤에도 건조장이 있다. 한천 체험은 5천원부터 다양하게 있으며 체험 후 인증 사진과 수료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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