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무대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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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8 07:59  |  수정 2018-02-08 07:59  |  발행일 2018-02-08 제22면
[문화산책] 무대 공포증
박소현 <피아니스트>

무대에 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무대공포증’이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사회공포증의 일종으로 무대에 서기 전 불안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천 번 무대에 서는 세계적인 연주자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이런 종류의 두려움일 것이다.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연주 전 불안한 마음을 누르기 위하여 독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6잔씩 마신다거나,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가 인터뷰에서 여전히 무대공포증을 호소하는 경우를 보더라도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작은 콩쿠르와 연주를 시작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한 나의 경우에도 무대공포증은 피할 수 없는 숙적이자 질릴 만큼 따라붙는 성가신 존재였다. 같은 전공을 하는 친구들이 모여 있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심지어 강제적으로 혈압을 낮춰주는 혈압조절제가 조금이나마 무대에서 멋대로 쿵쾅거리는 심박수를 잡아준다는 ‘마법의 약’(결국 얼마 전 수험생들의 혈압조절제 오남용 사례가 심각한 문제라고 기사화되었지만)으로 둔갑하여 우리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떠돌아 다닐 정도였다.

무대공포증은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뒤따르는 문제라 생각된다. 공포는 주로 불안감과 두려움에서 온다. 예컨대, 공연 도중 돌발 상황이 일어나 흐름이 끊기면 어쩌지 하는 식의 앞선 걱정으로부터 발생하는 식이다. 이 불안함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끊임없는 연습을 병행한다. 물론 그로 인해 상당 부분 불안감이 감소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두려움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두려움은 그 실체가 명확한 것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 낸 가상의 상황이 그 크기를 키워나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수필가 전혜린이 쓴 일기 형식의 에세이에 이런 글이 있다. ‘과제 그 자체보다는 과제를 초극 못할까 하는 공포가 우리의 심신을 누른다는 말은 정말인 것 같다.’

한동안 무대공포증으로 신경이 날카로웠던 때에 읽게 된 글이다. 당시 엄청나게 공감을 한데다, 의외로 무대에 대한 공포감이 사라지고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끔 되뇌곤 한다. 무대에 서는 직업을 가진 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과제 앞에서는 그 누구나 비슷한 공포감을 느낀다는 것과 정말 두려움이란 건 생각에서 오는 것이구나 느끼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연주자로서 무대에서 느끼는 긴장은 늘 안고 가야 하겠지만, 그 긴장이 큰 두려움으로 느껴지지 않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결국 두려움의 크기를 줄일 수 있는 근본은 내실을 쌓아가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소현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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