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더 히어로·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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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2   |  발행일 2018-02-02 제42면   |  수정 2018-02-02
하나 그리고 둘

더 히어로
한물간 무비스타, 죽음 앞에서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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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찍은 딱 한 편의 대표작이 전부인 웨스턴 영화배우 ‘리 헤이든’(샘 엘리어트)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다. 하나 밖에 없는 딸과 전부인과도 소원하고 일거리도 별로 없는 상태인데다 치료를 해봤자 생명을 조금 연장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아는 그는 삶의 의욕을 잃고 만다. 그런데 때마침 딸 또래의 매력적인 여성 ‘샬럿’(로라 프레폰)과 만나게 되고, 서부극 보존협회 공로상 시상식 영상이 큰 인기를 모으면서 리는 간만에 행복을 느낀다.


말기암인 70代 배우의 인생2막 이야기를 담은 작품
브렛 헤일리 감독·샘 엘리어트 주연…묵직한 울림



‘더 히어로’(감독 브렛 헤일리)의 줄거리는 얼핏, 어떤 상황에서도 삶은 중요하기에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설교처럼 들릴 수 있다. 또한, 대개 현실에서는 나쁜 일들이 겹치기 마련이므로, 일흔 한 살의 노인 앞에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난다거나 우연한 기회에 다시 스타가 된다거나 하는 일들은 판타지로 느껴지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서정적인 영상으로 리의 캐릭터와 심리 변화를 차분히 묘사하는 영화의 스타일은 ‘더 히어로(The Hero)’를 경망스러운 희망가와 차별화시킨다. 죽음이 예고될 때도, 샬럿에게 사랑을 느낄 때도, 심한 모욕감에 시달릴 때도 리는 대체로 혼자 감정을 정리하거나 삭이며 생사에 관조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가식이 없고 진중해 보이는 리의 모습은 그가 대표작에 출연한 이후 40년 동안 걸어왔던 배우로서의 꾸준하고 성실한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래서 말년에 다시 찾아온 사랑과 명성은 마땅히 그가 누려도 될 법한 행운처럼 느껴진다. 약과 알코올에 다소 취해 있기는 했지만, 공로상 시상식에서 평범한 여성을 무대로 올려 영웅으로 만든 퍼포먼스도 모든 인간을 존중하는 그의 평소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유효한 질문은 오히려 이것이 ‘끔찍한’ 판타지는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암세포가 육체를 점령하고 있는 사람에게 모처럼 찾아온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은 축복일까 또 다른 고문일까. 어느 쪽이든 종결부 리의 선택은 그가 이 딜레마 또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음을 암시한다. 비관주의자도, 낙관주의자도 죽음의 사신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잘’ 맞이하는 길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얼마만큼 자기 삶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목인 ‘더 히어로’는 ‘영웅’ 보다 ‘주인공’의 의미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시작과 끝에서 해변에 밀려드는 파도의 움직임을 삽입한 후, “론스타 바비큐 소스, 닭고기의 완벽한 파트너”라는 광고 문구를 반복해 말하는 리를 한참 비춘다. 동일한 것 같아도 매번 다를 수밖에 없는 파도의 움직임과 리의 발성처럼, 자연의 섭리 속에 그의 남은 시간도 유사하지만 새로운 하루로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리는 죽음 앞에 선 자신의 삶을 이끌어간다. 인간과 삶을 향한 감독의 꽉 찬 태도가 묵직한 온기를 남기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7분)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소년과 인어소녀의 만남 그린 日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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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FX 기술의 발달로 어떤 상상력이든 실사 영화화할 수 있고, 실사와 CG, 애니메이션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에 과연 그림을 그려서 영상화해야만 할 이야기라는 것이 있을까? 소재에 관해서는 논쟁적일 수 있으나 사진과는 또 다른 그림의 아름다움을 아는 이들에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아니다. 더욱이 세계가 주목하는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나면 이런 질문에 응당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독창성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작품들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나 유럽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은 물론이요, 기존의 재패니메이션과도 다른 차원에 있다. 작화, 캐릭터, 서사 등 모든 면에서 유아사 마사아키는 관객들의 예상과 기대를 기분 좋게 뛰어넘는다. 그의 작품들에는 분명 어떤 배우나 CG로도 실사화하기에 벅찬 톤 앤 매너가 있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를 신나게 종횡무진 하며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그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 애니메이션이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만의 작화·서사 등 개성 톡톡
경쾌하고 동화 같은 상상력과 뮤지컬 영화 같은 재미



쇠퇴한 항구마을 ‘히나시’에는 인어가 재앙을 가져온다는 전설이 있다. ‘가이’(시모다 쇼타)는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를 따라 히나시에 온다. 내성적인 그에게는 음악만이 유일한 친구다. 어느 날, 카이와 함께 밴드를 만들고 싶어하는 ‘쿠니오’(사이토 소마)와 ‘유호’(고토부키 미나오)가 가이를 오래 전 문을 닫은 유원지 ‘인어랜드’로 데려가고, 아이들은 여기서 노래 연습을 하다가 사랑스러운 인어소녀, ‘루’(다니 가논)를 만나게 된다. 음악과 노래, 사람을 좋아하는 루는 마을 행사를 계기로 금세 명물이 되지만, 인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잡아 없애려 한다. 가이의 밴드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루를 가둔 것은 인어에 대한 무지와 오래된 편견, 그리고 오해다. 영화는 루의 밝고 의협심 강한 성격을 부각시키고, 점잖은 신사이자 뜨거운 부성애를 가진 루의 아빠까지 등장시켜 인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인간의 편협함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인어가 자유롭게 출몰하는 어촌의 이야기는 온갖 상상력이 결합된 판타지인 한편, 꿈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 십대들의 방황이나 마을의 경제 및 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어른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제목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할 뿐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을 한 자리에 결집시키는 등 서사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가이의 밴드와 루가 부르는 노래에는 프로들의 그것만큼 시원한 목소리와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시각적인 볼거리가 더해지면서 뮤지컬 영화처럼 흥을 돋운다. 다채로운 색깔의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신나는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인물들을 역동적으로 조합한 편집이 눈에 띈다. 날카로운 주제가 전달하는 무게감, 남다른 상상력의 활기가 잘 조화된 작품이다. (장르: 애니메이션, 등급: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112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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