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혁의 중년 남자 이야기] 스마트폰과 이별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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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2   |  발행일 2018-02-02 제39면   |  수정 2018-06-15
나 휴대폰 없는 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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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직업상 스마트폰이 거의 필요 없는 사람이지만,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을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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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 없던 시대에 사랑을 받았던 공중전화기. 무선호출이 유행하면서 공중전화기 앞에 길게 줄지어 선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풍경도 휴대폰의 등장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필자가 애정과 관심을 담아 지켜보던 걸그룹 중에 ‘미쓰에이’라는 그룹이 있었다(2017년 12월27일을 기해 공식 해체했다). 국민 첫사랑 ‘배수지’ 때문이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룹은 해체되었지만 첫사랑 ‘수지’는 우리 곁에 배우로 머물기에 외롭거나 슬프지는 않다. 다른 삼촌들도 비슷한 상황일 거다.

이 그룹의 노래 중에 ‘남자 없이 잘 살아’라는 곡이 있다. 굳이 노래 제목까지 끌어들여 하고 싶은 이야기란 도대체 무엇일까? 뭐, 그리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다. 꼭 있어야만 할 것 같지만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것. 나는 OO 없이 잘 살아,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중년의 여러분에게 혹시 있는지 궁금해서다.

중년 남자 이야기의 이번 주제는 바로 ‘나는 휴대폰 없이 잘 살아’다. 두 달 전, 만취 후 귀가 중에 스마트폰을 분실했다. 택시에 두고 내렸는지, 어디에 흘렸는지 2∼3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며칠 그냥 살아봤는데 크게 불편함을 못 느꼈다. 내친김에 휴대폰 없이 살아봐? 호기심은 언제나 행동을 유발한다.

눈 뜨고 있는 모든 순간 함께한 ‘分身’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내 삶 길들여 좌우
두달 전 만취 귀갓길 분실후 결별 수순
사나흘 금단현상 이어 일주일째 안정
다시 찾은 시간적 여유·사색의 즐거움
‘중독된 사랑’의 족쇄 벗어나 자유 만끽


사나흘간은 나 또한 금단현상을 경험했다. 어딘가에서 진동소리가 자꾸 들려와서 두리번거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맡의 폰부터 찾았다. 다른 사람이 옆에서 폰을 사용하고 있으면 쓸데없이 기웃거렸다. 특별히 할 일을 못 찾고 서성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폰 없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휴대용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나마 무선호출기가 대중적으로 보급돼 동네 슈퍼 앞 공중전화에는 항상 길게 줄이 있었다. ‘100482’ 같은 응급호출이라도 받는 날에는 앞에서 오랫동안 공중전화를 붙잡고 있는 사람과 시비가 붙기도 했다. 음성메시지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상상하는 기다림의 시간에는 달달한 미풍이 불었다.

무선호출기조차 없던 시절은 또 어떠한가? 필자는 중학교 때 지하상가 벤치에서 꼬박 세 시간을 기다린 적이 있다. 집에서는 분명 나갔다는 친구를 기다리느라 말이다. 친구는 결국 나타났다. 오다가 작은 사고가 있어 많이 늦었지만 분명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왔단다. 올 것이라는 믿음,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 그 시절에는 그런 든든한 믿음이 무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친구를 기다리며 읽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휴대폰은 우리에게서 편지와 엽서도 빼앗아갔다. 영작 공부를 핑계로 해외 펜팔을 하다가 미국 여학생의 사진을 받고는 반의 스타가 되었던 친구, 글씨를 너무 못 쓴다고 수줍어하며 연애편지 대필을 부탁하던 학교짱, 방학 때 어느 먼 나라에서 날아온 친구의 사진엽서 등 스마트한 세상의 휴대폰은 그러한 낭만을 송두리째 뽑아가 버렸다.

스마트폰의 폐해에 대해서는 두말해봤자 입만 아프니 이제부터 스마트폰 없는 달콤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그 첫째는 무엇보다 시간적 여유다. 필자는 직업상 스마트폰이 거의 필요 없는 사람이다. 영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한 개씩 택배 상자를 받을 일도 없다. 인맥 관리를 잘해서 사람 좋은 누구로 칭송받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럼에도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을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었다.

불필요한 검색, 단톡방의 의무적인 반응, 시간 낭비용 게임 따위에 그 시간을 써버린 것이다. 부부가 침대머리에 앉아 각자 스마트폰을 만지다 잠든 날도 허다했다. 그 시간을 고스란히 벌었다. 읽고 싶던 책도 읽고, 밀린 영화도 보고, 주말에는 좋아하는 만화방에도 간다. 거짓말 같다고? 오늘 하루 동안만 본인이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시간을 재보시라. 악마의 유혹은 커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둘째는 불필요한 대인관계들을 한방에 정리해버렸다. 중년이 되고 나면 관계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진짜 나의 사람들을 구분해 내는 것이다. 직업상 어쩔 수 없는 경우는 예외로 하고, 가식으로 사람을 만나기에 중년의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흐른다. 휴대폰을 없애도 십년, 이십년지기들은 어떻게든 연락이 온다(물론 첫인사가 험하게 시작되긴 하지만).

간혹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싶을 때가 있다. 혼술을 하기엔 좀 청승맞을 때, 묵묵히 눈빛만으로 술잔이 비워지는 친구를 떠올린다. 전화번호 목록을 한참 뒤지다가 포기하고 덮을 때가 많았다. 전화번호부를 가득 채운 사람들 중에 진정 나와 통하는 이는 몇이나 되던가? 휴대폰을 없애고 나니 이런 일방적인(?) 약속도 가능해진다. 친구야, 그 집에서 몇 시에 보자. 올 때까지 기다릴게. 나 휴대폰 없는 거 알지?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이 없어서 좋은 점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전화번호 서른 개쯤은 거뜬히 외우던 사람들이 어느샌가 자기 번호도 헛갈리곤 한다. 노화에 의한 기억력 감퇴로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 편하게만 살았다. 잠시 생각이 나지 않는 정보들을 책을 찾아보는 대신에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버린다. 기억해내고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사물과 현상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없다보니 깊이가 얕다. 사색을 통한 결론이 아닌 검색을 통해 결론을 도출한다. 로댕의 시대에 스마트폰이 존재했다면 그의 걸작인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폰이 사라지고 나서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년이면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할 시기 아니던가? 모두에게 해당되진 않겠지만 스마트폰이 사유에 커다란 방해요소임은 인정해야 한다.

이상으로 휴대폰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낀 중년의 소감을 몇 자 적어보았다.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눈이 아닌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연인들의 모습.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나처럼 폰을 아예 없애라는 말은 아니다. 하루에 단 한 시간이라도, 안되면 주말이라도 스마트폰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해 보라는 이야기다.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대지를 물들이는 석양을 지켜보며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껴보자.

칼럼니스트 junghyu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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