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지방선거 ‘한국판 유스퀘이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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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9   |  발행일 2018-01-29 제31면   |  수정 2018-01-29
[월요칼럼] 지방선거 ‘한국판 유스퀘이크’ 보고 싶다
배재석 논설위원

유스퀘이크(Youthquake)는 ‘젊음(youth)’과 ‘지진(earthquake)’의 합성어다. 원래 1960년대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장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젊은 세대들의 패션·음악·태도 등에서 나타난 변화를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최근에는 선거와 관련해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뉴질랜드 등의 30대 지도자들이 젊은 층으로부터 높은 지지율을 얻은 현상을 표현할 때 주로 쓰였다.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지난달 ‘2017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유스퀘이크 위력은 지난해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선거판을 휩쓸었다. 곳곳에서 젊은 정치인들이 젊은이의 반란에 힘입어 최고지도자로 등극했다. 뉴질랜드에서는 37세의 여성 재신더 아던 노동당 대표가 총리로 취임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제바스티안 쿠르츠 국민당 대표가 31세로 세계 최연소 총리에 올랐다. 앞서 5월에는 프랑스에서도 만 39세 에마뉘엘 마크롱이 66% 지지율로 대통령이 됐다. 이밖에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도 39세고,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43세다.

유럽에서 젊은 총리 탄생이 가능한 것은 청년들이 일찍부터 정치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30대 국가 지도자가 혜성처럼 나타난 게 아니다. 빠르면 10대 후반 혹은 20대부터 지방정치에 발을 들여놓고 정치를 배운 뒤 중앙무대로 진출한다. 나이는 어려도 정치 경력이 보통 10년을 넘는다. 실제로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중학생 시절부터 공산당 청년조직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도 23세에 청년국민당 위원장을 맡았고, 시의회와 중앙 내무부 차관을 거쳐 27세에 외무장관 자리에 올랐다. 이들 젊은 지도자들은 일찍부터 발로 뛰며 몸으로 익힌 갈등조정 능력과 협상력이 뛰어나다. 또 당내 역학구도나 이념에도 대체로 자유롭다.

그럼 우리의 청년정치 토양은 어떤가. 한마디로 ‘무일푼’ ‘무인맥’ ‘무경력’ 3무(無) 청년들이 도전하기에는 불모지나 다름없다. 뜻있는 20~30대가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싶어도 마땅한 입문 방법이 없고, 선거에 출마하려 해도 당장 돈 장벽에 가로막힌다. 정당공천이라도 받아야 유리하지만 하늘의 별 따기다. 총선이든 자치단체장 선거든 고위관료·CEO·판검사 출신이거나 시민단체 활동이라도 있어야 공천명함을 내밀 수 있다. 어쩌다 청년비례대표를 꿰차도 이미지 쇄신용이거나 얼굴마담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다. 더구나 기성정치인보다 정보·인맥·조직력 등 사회적 자본도 절대적인 열세라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젊은 사람이 뭘 알겠느냐’는 가부장적 문화에 절망한다.

‘젊은 피’ 수혈이 막히면서 한국의 정치는 동맥경화에 걸려 늙어가고 있다. 2016년 출범한 20대 국회를 보더라도 당선자의 평균 연령이 55.5세로 19대 때보다 1.6세 높아졌다. 절반 이상이 50대고 60대는 81명으로 19대보다 12명 늘었다. 70대 이상도 5명이나 된다. 반면 20~30대 국회의원은 3명으로 역대 최저다. 지역구는 당시 만 39세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이 유일하다. 지방정치도 마찬가지다. 2014년 치러진 6·4지방선거 등록후보의 평균 연령은 52.9세다. 광역의원 당선자 가운데 40세 미만은 전체 789명 중 20명에 불과하다. 주민과 직접 접촉하는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당선자 2천603명 중에서 40세 미만은 91명에 그쳤다.

바야흐로 세계는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젊고 패기있는 리더십이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는 흙수저·취업절벽 등 누적된 구조적 모순이 젊은이들을 옥죄고 있다. 당면한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세대가 정치권에 수혈돼 함께 갈등을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 오는 6월 지방선거에 많은 20~30대 청년들이 도전해 한국판 유스퀘이크를 선보였으면 한다. 물론 현실정치의 냉혹함에 가로막혀 좌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거법과 공천제도도 신인에게 불리하고, 만 25세 이하는 아예 출마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가능해 보이는 것은 꿈이 아니라 그저 괜찮은 계획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치와 희망을 꿈꾸는 ‘젊은 피’들의 6·13 도전을 보고 싶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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