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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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9 07:43  |  수정 2018-01-29 07:43  |  발행일 2018-01-29 제15면
[행복한 교육]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올 겨울, 유난히 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인이 많았다. 게다가 살아온 세월이 비슷해 이젠 사립문 밖이 저승이라는 옛말을 실감했다. 문상객으로 잠시 조문을 하는 것을 넘어 남은 가족, 특히 자식을 앞세우고 힘겹게 살아갈 노모, 미혼 자녀의 앞날과 병구완으로 지친 배우자의 남은 생도 염려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제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이라는 명절을 모티브로 삼은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았다. 산 자와 죽은 자, 그 죽은 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니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난 가족이 떠올랐다. 죽은 자는 산 자의 기억에 남아 있을 때까진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또한 살아 있는 사람은 문득 찾아온 죽음의 고비에서 죽은 자의 축복을 통해서만이 현생으로 돌아올 수 있고 마침내 그 생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어느 시기에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사별하느냐는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이다. 특히 주변 가족들이 그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느냐에 따라 어린 자녀일수록 그 영향이 지대하다.

오랫동안 성장을 지켜보았던 제자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며칠 전 폐암으로 1년을 끌다가 세상을 떠났다. 괴팍하고 삐딱한 성격에다 사업 실패로 알코올 중독에 이르렀다. 방탕한 생활과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도 모자라 아내에게 폭언을 일삼고 걸핏하면 가구를 부쉈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25년을 살다가 이혼을 신청했고 법원은 아내의 손을 들어 주었다.

아버지의 무책임은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했고 아버지를 향한 극심한 분노는 에너지가 되어 공부에 매달리게 했다. 딸은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측은지심을 가졌지만 아들은 끝끝내 병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친가 가족마저 찾아오지 않는 병실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혼한 아내가 남편이 하루빨리 죽기를 기다리며 병실을 지켰다. 마지막 2주일은 하루에 30분 정도 의식이 돌아오는 실낱같은 목숨을 부지하며 딸이 의사국가고시를 치르는 걸 보려고 버티다 눈을 감았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들은 세상 밖에서 떠돌던 아버지를 돌봐주었던 몇몇 지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은커녕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그렇지만 동분서주하며 식대를 계산하고 빠릿빠릿하게 부의금을 정리하기도 하였다.

가족들이 해야 할 일이 보였다. 어머니는 지지리 복도 없이 산, 지친 몸이라도 차라리 빠르게 회복할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고집불통에 뒤틀린 성격이 나와 스스로와 가족을 힘들게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는 전문상담이 필요한 것이다. 전라도 지방에 내려오는 씻김굿이나 경상도의 오구굿이 떠나는 자의 맺힌 한을 위로하고 남은 자의 내일을 축원하는 의미를 동시에 담아 굿판을 벌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남은 자의 삶을 위한 것이다. 이제 그 몸서리쳐지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기에 아들은 응어리를 풀면서 아버지와의 화해를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떠난 못난 아버지가 시시때때로 찾아와 힘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생의 어두운 골목길을 터벅터벅 혼자 걸어갈 때 반짝이는 뭇별로 말을 건넬 것이다. 비 오는 날 소주 한 잔 놓고 세상살이가 힘들어 울 때 무심한 듯 바람이 되어 말을 걸어올 것이다. 그래야만 아버지처럼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요즘 중·고등학교에서 주제 통합 프로젝트로 ‘어르신들의 자서전 써 드리기’가 인성교육 측면에서도 매우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점의 관심도 없던 늙은이에서 시대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어르신으로 시선이 변화하면서 질곡의 삶에 공감하며 우리 아이들이 부쩍 자란다. 여느 해보다 많았던 이번 겨울의 갖가지 불행한 사건을 스치는 뉴스로만 읽지 말고 그 안에 숨 쉬던 사람을 자세히 보아야 할 것이다.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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