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탠저린·식스 빌로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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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6   |  발행일 2018-01-26 제42면   |  수정 2018-01-26
하나 그리고 둘

탠저린
“바람 피운 남친을 찾아”…성매매 트랜스젠더의 하루


20180126

선댄스 영화제 및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된 ‘션 베이커’ 감독의 2015년 작 ‘탠저린’은 먼저 100% 아이폰으로 촬영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처음에는 제작비 절감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뜻밖에 아이폰 카메라만의 고유한 색감과 감성이 만들어지면서 영화는 디지털 환경이 탄생시킨 새로운 미학적 영상이라는 측면에서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아이폰만으로 촬영한 션 베이커 감독의 2015년 作
영화 주무대 도넛타임 신 등 독특한 미학적 영상 선봬


션 베이커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탠저린’은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들의 삶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이들의 하루에는 우울하고 지친 기색이 없다. 오히려 피로에 찌든 다수의 직장인들이 가지지 못한 강한 에너지가 이들에게서 넘쳐난다. 몸을 파는 트랜스젠더 ‘신디’(키타나 키키 로드리게즈)는 출소하자마자 절친한 친구 ‘알렉산드라’(마이아 테일러)에게 포주이자 남자친구인 ‘체스터’(제임스 랜슨)가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분개한 신디는 체스터가 만났다는 금발 머리 백인 여자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고, 알렉산드라는 저녁에 있을 자신의 공연을 준비한다.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크리스마스 전야에는 모르는 게 나았을 진실 폭로전 끝에 깊은 불화가 야기된다. 트랜스젠더, 포주, 매춘부, 이민자들까지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뒤섞여 벌이는 한바탕 난장(亂場)이 흥미진진하면서도 어쩐지 안쓰럽다.

‘탠저린’에는 제목처럼 따뜻하고 눈부신 귤 빛깔을 기본으로 인물들의 컬러풀한 의상과 메이크업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온화한 날씨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는 LA의 분위기도 이러한 색감과 어울리고, 무엇보다 인물들의 떠들썩한 하루를 묘사하는데 알록달록한 원색들이 잘 맞아떨어진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강점은 다이내믹한 촬영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은 카메라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날렵한 거리 트래킹 샷을 만들어내고, 코믹한 상황에서 대사나 연기의 가벼운 느낌을 한껏 살려준다. 영화가 시작되었던 공간이자 절정부에서 여러 종류의 갈등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공간, ‘도넛 타임’ 신에서 또한 스마트폰 카메라의 활약은 뛰어나다. 렌즈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은 무시와 편견, 차별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꾸려나가는 인물들의 영혼을 잘 표상한다. 장면 장면에서 돋보이는 내용과 형식의 적확한 조화가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88분)


식스 빌로우
“삶의 길 잃은 이들에게”…雪山에 고립된 남자의 사투


20180126

전직 프랑스 국가대표 하키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식스 빌로우’(감독 스캇 워프)는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장대함을 스크린 가득 담아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간의 발자국이 감히 닿을 수 없었던 깊은 골짜기들은 동화 속 눈의 여왕처럼 숨 막히게 아름다운 한편, 심장을 얼려버릴 듯 차갑고 험준해 보인다. 그래서 설산에 얹어진 ‘에릭 르마크’(조쉬 하트넷)의 자기고백적 내레이션은 광활한 자연 속에서 한낱 미물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작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듯하다. 마약에 빠져 인생길을 헤매고 있는 그는 이 거대한 얼음장 같은 산 속에서도 길을 잃고 만다.


전 佛 국가대표 하키선수 실화…조쉬 하트넷 주연
스캇 워프 감독 연출…스케일 넘치는 영상미 일품


재활 중이었던 에릭은 혼자 보드를 타러 매머드 산에 올라갔다 조난당한 후 굶주림과 추위, 늑대와 사투를 벌인다. 프로 하키선수로서 명예를 모두 잃고, 극한의 환경에 처해 목숨까지도 위태로워진 에릭은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한탄하기도 하지만, 죽음의 기로에 설 때마다 잦아드는 삶의 불씨를 되살리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 것은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가족애와 스스로 망가뜨린 삶을 되돌리고픈 열망이다. 산에서 길을 찾아 나가는 행위가 인생의 구렁텅이를 빠져나가는 내연과 맞물려 처절하게 묘사된다. 극한의 배경과 생존 싸움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와 닮아 있고, 자연에 둘러싸여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다지는 부분은 ‘와일드’(감독 장 자크 발레)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두 작품에 비해 내러티브가 단순한 만큼,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육체적 고통과 과오(過誤)에 대한 자기 치유의 과정이 별다른 수사(修辭) 없이 깔끔하게 전달된다. 어린 시절 가정의 불화와 운동선수로서의 실패가 남긴 트라우마, 약의 강렬한 유혹까지도 영하 40℃의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나가는 에릭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전까지 크고 작은 장애물에 부딪히며 넘어지고 깨지면서도 다시 일어섰던 것처럼, 그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티며 인간의 한계에 저항한다. 여러 차례 부감과 익스트림 롱 샷을 통해 강조하고 있듯 여기에는 철저한 고립 상태가 전제되어 있다. 아무 기댈 곳 없이 오직 홀로 자신의 민낯과 대면했을 때만 가능한 정직한 거듭남이 에릭의 험난한 여정 속에 발견된다.

그래서 ‘식스 빌로우’는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미미함, 또는 나약함이 아니라 사실상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이 때로 이론과 상식을 뛰어넘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지금,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이들, 인생의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를 만들고자 분투하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8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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