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가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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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6   |  발행일 2018-01-26 제23면   |  수정 2018-01-26
[조정래 칼럼]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명하고 ‘모욕’을 느낀다고 직설했다. 대통령이 이처럼 격앙된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향한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사 등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규정하자 문 대통령이 이에 발끈하면서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걸고 넘어진 것은 ‘너무 심했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등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이 전 대통령이 금도를 넘었지만 논쟁의 중심에 덜컥 걸려든 문 대통령의 감정적 대응도 신중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衆論)이다.

노무현은 왜 죽어서도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는가. 보수는 왜 잊을 만하면 무덤 속에 있는 노무현을 불러내나.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제각기의 책임은 방기한 채 그 죽음 뒤에 숨으려고만 하는가. ‘궁 즉 노무현’인가. ‘노무현 탓’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보수정권의 관행은 이제 식상할 대로 식상하다. 노무현의 죽음, 그 실존과 진실은 실재와 사실 너머에 위치해 있다. 보수든 진보든, 심지어 노빠들까지 노무현의 죽음에 빚지지 않은 이는 없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연발하며 뒤늦게 울고불고 참회해 본들, 죽은 이는 말이 없을 뿐이다. ‘노빠’들의 경주마적 저돌과 맹목적 지지, 그리고 외눈박이적 맹신과 그로 인한 집단적 배신이 노무현을 죽음에 이르게 한 심연의 원인, 바로 아마추어리즘이었음은 불변이다. 노무현의 죽음, 그 내연(內緣)적 진실은 진보세력에 의한 타살 혹은 자파세력들에 의한 자기 살해로 기록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노무현을 죽게 한 상대 세력들의 원죄가 경감되거나 면죄되진 않는다.

이명박 정권은 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을 한 현 정권이었다. 당시 집권세력은 광우병 파동과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등으로 초래된 정권적 위기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노무현 정권을 물어뜯으며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는 게 정치적 정설이다. 핍박하고 망신을 주는 과정에서 무소불위 정치검찰의 권력이 동원됐다. 세간에 잘 알려진, 당시 한 수사검사는 ‘노무현씨’로 지칭하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까지 박탈했다 한다. 노무현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정황적 증거와 합리적 의심은 사건의 재구성을 요구한다. 요즘 한창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1987’처럼 노무현 영화가 만들어지면 실체적 진실이 드러날까.

정치보복을 한 정권은 정치보복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용서하지 않는 한 정치보복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내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티끌만 잘 보는 정권의 이 대통령은 내 허물을 남의 허물인 듯 일반화하는 ‘유체이탈화법’의 고수였다. 권력기관을 동원한 전 정권 지우기 등의 정치보복이 일상화됐다. 지금까지 그 어느 정권도 지나간 잘못을 반성하거나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정치보복의 ‘내로남불’ 대물림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노무현은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겼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생의 한 순간, 절망적 선택을 하기까지 무수히 생사를 넘나들었을 그의 인간적 고뇌가 짐작된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슬픔, 집단의 아픔으로 치환(置換)하지 못하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다. 작금의 대한민국이 그러하다. 노무현의 절망과 죽음을 두고 타살이니 자살이니 서로 옳다고 대거리에 여념이 없는 살아남은 이들과, 세월호 유족들의 치유되지 않을 상처에 소금을 뿌려댄 박근혜 정권과 그 치하의 우리는 모두 위험한 짐승들이었다.

노무현의 주검을 더 이상 시간(屍姦)하지 말고, 노무현의 죽음 뒤에 숨어 본인의 죽음을 모면하려 하지 말며, 부관참시(剖棺斬屍)할 요량이 아니라면 그의 죽음을 더 이상 소환하지 말라.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삼우제(三虞祭) 전에는 반성할 줄 모를 극우는 논외로 한다 치더라도, 폐족이었다가 부활한 노빠들만이라도 봉하마을 노무현 묘비석 앞에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고 잘못부터 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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