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TK여성계의 존재감은?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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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3   |  발행일 2018-01-23 제30면   |  수정 2018-01-23
대구경북 여성신년교례회
지역여성계 중요한 이벤트
여성들 삶의 질 향상 위해
어떤 메시지 내는지 의문
이슈중심 연대·협력 필요
[화요진단] TK여성계의 존재감은?
이영란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지난해 시작된 ‘여성 행진’(Women’s Marches )이 세계 여성운동의 상징으로 자리잡는 모습이다.

AP·AFP통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1주년이던 20일(현지시각) 미국 전역에서 반(反) 트럼프 목소리를 높인 여성행진 물결이 21일 런던, 파리, 시드니, 마드리드,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으로 이어졌다. 지난해에 이어 2년째인 여성행진에서는 양성평등, 성폭력 근절, 여성 정치참여 확대 등을 촉구했다. 영국 런던 테리사 메이 총리 공관 앞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우리는 강하다(We Are Powerful)’, ‘그들의 시간은 끝났다(Time’s Up)’ 등이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여성행진은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되어 언론계와 영화계를 비롯해 다른 모든 분야로 확산된 여성에 대한 상급자의 성추행과 성차별에 대한 저항운동인 ‘미투(#Me too)’ 캠페인과 ‘타임즈업(Time’s Up)’ 운동으로 인해 한층 힘을 얻은 모습이다.

실제로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해 배우, 프로듀서, 작가 등 할리우드 업계에서 일하는 여성 300여명은 ‘미투’ 캠페인에 이어 단체를 결성했다. 그리고 1천300만달러(약 139억원)의 기금을 모아 ‘캠페인’을 넘어 성폭력 문제와 남성중심의 문화를 끝내자는 의미로 ‘Time’s Up ’ 운동을 벌이는 ‘행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새해벽두에 열린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배우들이 일제히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단체 행동을 벌인 것은 그 연장선상이다.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은 오프라 윈프리는 ‘새로운 시대가 온다(Time’s Up)’고 외치기도 했다. 시들해진 ‘여성들의 연대’의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분위기다.

대구·경북에서도 매년 1월초 여성신년교례회가 열린다. 올해도 예외없이 국회의원, 시의원, 여성지도자들이 모여 성황리에 행사를 마친 듯하다. 다만 대구·경북 여성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로 꼽히는 그 행사를 해마다 열면서 ‘일반 여성’들의 삶의 향상을 위해 어떤 메시지를 내는지는 의문이다. 태평양 건너편 ‘할리우드 시상식’과 대구·경북 여성신년교례회를 비교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이긴 하다. 그러나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자리가 정치인이나 기관장들의 홍보의 장으로 전락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TK 여성계의 존재감이나 활동력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위축된 듯하다. 특히 지역의 구체적인 문제나 주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지방 정치 영역에서 여성소외 현상을 개선시키기 위한 ‘연대활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1990년대말 여성계 활동에도 크게 뒤지는 느낌이다.

되돌아보면 TK 여성계는 1990년부터 2000년대초 사이에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했다. 보수권에서는 대구·경북 여성단체협의회, 진보권에서는 대구여성회·대구여성의 전화 등이 서로 경쟁하면서 여성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특히 199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여성단체협의회는 대구시장 후보 초청 정책토론회를 열어 이들의 여성정책비전을 점검하고 여성후보공천 확대를 위해 연대에 나서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우리지역의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이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일부 성과가 있지만, 작금에 와서 아쉬움과 한계를 더 많이 노정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의 정치 참여 욕구가 커진 것을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1세대 운동이 여성 후보를 발굴·지원하는 과정에 역점을 두었다면 앞으로 2세대 운동은 후보 전략뿐만 아니라 정치제도 개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지역 여성계가 단체장 개인의 정치적 사리사욕에 이용되어서도 안된다. 또 단체 자체의 재정적 존립을 위한 일에 ‘여성’을 내걸고 활동을 하는 일도 곤란하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배우 메릴 스트립이 던진 “남녀 힘의 불균형이 권력 남용을 부른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는 발언은 여성계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바야흐로 세계적인 ‘여성 행진’ 움직임 속에서 대구·경북의 여성 운동가들도 이슈를 중심으로 한 협력과 연대를 이끌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해주길 기대한다.
이영란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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