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보라카이, 국내 명승지부터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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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2   |  발행일 2018-01-22 제31면   |  수정 2018-01-22
[월요칼럼] 보라카이, 국내 명승지부터
원도혁 논설위원

지난해 7월 말 여름 정기휴가 때 3박4일 일정으로 필리핀 보라카이에 갔다 왔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환상적인 신혼여행지로 알려진 보라카이. 그러나 나의 첫인상은 ‘그저 그런 동남아의 흔한 섬’쯤으로 보였다. 20~30대 신혼도 아니고 60을 코앞에 둔 구혼상태에서 아내와 함께 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4시간여 비행 끝에 필리핀 칼리부 공항에 내려서 버스로 한 시간 반 정도 이동해 선착장에서 다시 배를 타고 12분 정도 들어갔고, 배에서 내려 또 삼륜차에 나눠 타고 좁고 복잡한 도로를 달려 밤늦게 숙소를 찾아 가야 하는 불편 속에서 보라카이의 첫 밤을 맞았다. 그런데 숙소 리조트 바로 옆의 민가에서 키우는 닭들은 또 왜 그렇게 밤새도록 울어대는지 첫날 밤부터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환상적인 느낌이 들 리 만무했다.

소 다리뼈처럼 길쭉하게 생긴 자그마한 이 섬은 한국인 관광객들로 복닥거렸다. 동남아 특유의 운송 수단인 오토바이와 삼륜차, 지프니가 잦은 비로 인해 지저분해지고 좁은 도로를 분주하게 오가는 필리핀의 여느 해변도시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다만 배를 타고 나가 본 바닷속은 4~5m 깊이의 바닥 산호들이 표면에서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휴양 피서지 보라카이의 명성은 이 맑은 바다가 지켜주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고작 맑은 바다를 보려고 다들 불편과 불면의 난리통을 겪는 것이다. 곰곰이 되새겨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해외 여행이 대세인 시대가 됐다. 저비용항공사의 잇단 등장에다 여행사들의 저가 상품 개발 경쟁으로 동남아나 일본의 웬만한 관광지는 큰 비용 부담없이 어렵잖게 갈 수 있다. 비슷한 일정의 국내 관광보다 비용이 적게 들었다는 어느 신문사의 비교분석도 있었다. 국내 여행지의 비싼 음식값과 숙박료가 되레 해외여행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비슷한 비용이 든다면 차라리 해외 유명지로 갔다 오자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이다. 국내 음식업소와 숙박업계의 각성과 함께 개선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해외여행을 즐겨 다니는 우리 국민들도 이제 각성해야 한다. 여행수지 적자가 엄청난 상황인데도 너도나도 외국에 나가서 펑펑 돈을 쓰고 온다.

새로운 풍광과 문화를 체험하고 색다른 음식을 맛보는 것이 외국 관광의 매력이다. 오래전부터 유럽이나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었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다. 앞으로 북유럽쪽을 다녀오고 싶은 바람을 여전히 갖고 살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새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국내에도 얼마든지 빼어난 관광지가 많은데 왜 굳이 외국을 선호하는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게 됐다. 무작정 선진국을 동경하는 것은 정신적 사대주의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국내 관광정보를 물색해 봤다. 생각 외로 좋은 곳들이 많이 소개돼 있었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 같은 안내서 내용도 찬찬히 훑어봤다. 오래전에 가본 곳도 더러 있었지만 이름만 들어본 곳이 대부분이었다. 외국행보다 덜 번거롭고 효능은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국내 관광지부터 차례로 섭렵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라의 명승지, 우리 음식과 문화를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채 외국의 그것을 먼저 욕심내서는 안될 것이다. 주변인 대구·경북부터 찾아보자. 대구 방천시장과 근대골목이 지근 거리에 있다. 한 시간 거리인 경주와 포항에도 볼거리·먹거리가 널려 있지 않은가. 대게철엔 영덕으로 가서 색다른 미각을 즐겨봐도 좋으리라. 좀 더 멀리 눈길을 돌려보면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이나 대관령 양떼 목장, 통영 동피랑 마을, 진주성 촉석루와 중앙시장 비빔밥집, 남해 독일마을과 가천 다랭이마을, 울산 태화강 10리 대숲 등 즐길거리와 먹거리가 즐비하다. ‘기각첨도수(棄却甛桃樹), 순산적초리(巡山摘醋梨)’라고 했다. 곁에 단 복숭아나무 놔두고 신 돌배나무 찾아 산을 헤매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가까운 곳에 이런 좋은 곳을 놔두고 불편과 비용을 감수하면서 굳이 외국행을 결행할 이유가 없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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