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정치보복’ 논란 시즌2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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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2   |  발행일 2018-01-22 제30면   |  수정 2018-01-22
‘노무현’ 언급한 MB에
문 대통령 ‘분노’ 표시
전면나선 전현직 대통령
판이하게 다른 기본인식
사회갈등 새 출발점되나
[송국건정치칼럼] ‘정치보복’ 논란 시즌2

칼을 휘두르는 쪽은 ‘적폐청산’이라고 한다. 칼은 맞는 쪽은 ‘정치보복’이라고 한다. 과거정권(정확하게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을 겨냥한 검찰의 수사, 그리고 국정원을 비롯해 정부 기관 안에 설치된 여러 형태의 자정(自淨)기구 활동은 문재인 정부 8개월 내내 논쟁거리다. 정부·여당 대(對) 야당, 진보층 대 보수층의 대치에 그치지 않고 일반국민 속으로 파고들며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이참에 환부를 몽땅 들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언제까지 과거만 파헤칠 거냐는 반박도 있다. 눈만 뜨면 들려오는 전직 대통령과 그 주변의 비리혐의 소식에 분노하는 국민이 있고, 무차별 망신주기로 흐른다며 진위를 반신반의하는 국민도 있다. 문재인정부 사정당국의 칼날이 박근혜정부를 지나 MB정부를 본격 겨누자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적폐청산(또는 정치보복) 논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2008년 출범한 MB정부가 광우병 파동 촛불집회로 초반 어려움을 겪자 그 배후를 차단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이 연루된 박연차 게이트를 파헤쳤고, 그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이 있었으며, 노무현정부를 승계하는 문재인정부가 정권을 잡자 ‘복수’에 나선 것 아니냐는 가설이 정치권에 떠돈 지 오래다. 다만 그런 가설이 사실이라면 한국정치의 후진성, 정권들의 수준이 고스란히 민낯을 드러내는 일이기에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런데 경계선이 갑자기 무너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발화성 강한 뇌관을 직접 건드렸다. 재임시의 정치공작 혐의 같은 국정운영 문제를 넘어 실소유 논란이 있는 다스와 BBK 재수사가 시작되고, 국정원 특수활동비 사적 사용 의혹까지 제기되자 “많은 국민들은 보수궤멸을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한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건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라고도 했다. 현직 대통령과 전전(前前) 대통령이 전전전 대통령의 비극을 지렛대로 정치보복 논쟁에 직접 뛰어들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정치보복(적폐청산)을 둘러싼 사회갈등이 정리되기는커녕 사생결단식으로 흐르며 장기화될 위험이 있다. 아무래도 칼자루를 쥔 쪽은 살아 있는 정권이다.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인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은 최근 방송에 출연해 문 대통령이 ‘복수’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 복수가 ‘누구에 대한 앙갚음’이 아니라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문 대통령이 말했다고 한다. 양 전 비서관은 “이것이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아름다운 복수’라고 하시더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 칼을 맞는 쪽에선 저들도 과거 정권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복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MB 쪽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존재 때문이다. 백 비서관은 국회의원 시절인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때 현직 대통령으로 참석한 MB에게 “정치보복 사죄하라”고 소리쳐 국민 기억에 남았다. 문재인정부 들어 재선 국회의원까지 지낸 그를 1급인 민정비서관 자리에 앉혀 정치보복을 사실상 지휘하도록 했다는 게 MB 사람들의 시각이다. 반면, 문 대통령은 그런 주장을 ‘현 정부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양쪽의 인식차이가 극명함이 새삼 확인됐다. 전·현직 국가원수의 ‘정치보복’ ‘분노’ 발언이 8개월 동안 이어온 과거청산 작업을 새로운 출발선상에 세울 수도 있다. 그러면 미래를 향한 출발은 하염없이 미뤄진다.
송국건기자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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