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개헌과 지방선거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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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9   |  발행일 2018-01-19 제23면   |  수정 2018-01-19
[조정래 칼럼] 개헌과 지방선거

자유한국당 정태옥 대변인은 지난 17일 이렇게 논평했다. ‘문재인정부의 개헌 밀어붙이기는 6·13 지방선거 승리의 꽃놀이패 속셈이 뻔히 보인다.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 야당을 반분권 반개헌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국회 문턱을 넘으면 여당의 줄투표를 기대하는, 개헌이 돼도 좋고 안돼도 좋은 기막힌 전략이다’라고. 이어 문 대통령의 4년 중임제 선호에 따른 권력구조 논의 봉쇄, 노동의 경영권 참여 등 국민적 갈등 촉발, 분권 열망을 이용한 지방분권개헌 꼼수 등 3가지 문제점을 적시한 뒤 지방선거 전략 차원의 개헌은 안된다고 주장했다. 문제점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꽃놀이패에 말려들었다는 정국판단은 예리하고 시의적절한 논평으로 손색이 없다. 한마디로 한국당이 민주당의 개헌 프레임에 갇혔다.

오는 6·13 지방선거는 프레임 전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프레임은 무섭다. 일단 프레임의 수렁에 빠지면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깊게 빠져들어 종국에는 질식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외부에서 던져주는 구명 로프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자력에 의한 수렁 탈출이 불가능하다. 영화적 장면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 뻔히 두 눈 뜨고 당한다는 말이다.

한국당은 현재 목까지 잠긴 채 하늘을 향해 도움을 청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주위에 사람이 많지 않고, 하다 못해 구원의 아우성을 멀리 옮겨줄 메아리도 약하다. 프레임 탈출은 소극적으로는 오불관언 대꾸를 하지 않고 늪의 바다에 가만히 떠 있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는 다른 더 큰 프레임을 만들어내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개헌 프레임에 대응한 대체 프레임을 개발할 엄두도 못내는 한국당의 지리멸렬이다. 이대로 가다간 반대를 위한 반대 일색의 개헌 불임당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다. 홍준표 대표 1인체제로 일사불란 ‘홍비어천가’만 요란하다. 이래서야 어디 넓은 스펙트럼의 보수층 표심을 공략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대구경북은 공교롭게도 ‘반개헌 vs 개헌’ 두 세력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본진(本陣)을 대구경북에 차리면서 지역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개헌과 반개헌 세력 간 격돌 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대구경북은 지방분권 개헌운동의 본산이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지방분권 개헌 관철을 위한 1천만명 서명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임기말을 마무리하며 홀가분하게 소신 있게 지방분권 개헌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김 도지사와는 달리 당과 홍 대표의 눈치를 봐야하는 권영진 대구시장 역시 지방분권 개헌을 주창하다가 홍 대표에게 직설적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홍 대표발(發) 개헌 반대는 수도권·비수도권을 떠나 어쩌면 전국의 지방정부를 적으로 삼는 위험한 일이다. 개헌, 특히 지방분권 개헌은 지방정부의 숙원인 만큼 개헌 몽니는 한국당 스스로를 반지방분권 세력으로 왕따시키는 처사나 다름없다. 홍 대표가 지방선거의 전초기지로 삼은 대구경북은 지방분권 개헌의 본산이자 메카다. 한국당의 개헌 반대 당론과 대구경북 지방정부의 지방분권 개헌 찬성으로 한 집안 두 목소리를 내는 모양새다. 기실 선거공학적인 측면에서도 홍 대표의 개헌 반대가 지방선거와 개헌 투표 동시 실시에 따른 불리보다 더 메가톤급 역풍을 초래할 것 같은데…. 한국당의 선택이 못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한국당의 개헌 연기론은 당리당략적 판단이라는 비판에 속수무책이다. 오는 6월까지 당 자체 개헌안을 내놓겠다는 최근의 발표는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국회 개헌특위가 가동된 지난 1년간 한국당은 도대체 뭘 한다고 허송세월만 보냈나. 개헌연기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한국당은 최소한 자체 개헌안이라도 내놓고 여론전을 펴야 했던 것 아닌가.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미리 준비해 놓고 기다린 개헌 프레임을 예측 못했다면 한국당은 무능을 자인하는 일이고, 알고도 대비를 하지 않았다면 천생 타고난 ‘웰빙당’이란 비아냥을 들어도 싸다. 홍 대표의 밀어붙이는 리더십 또한 상대를 오히려 이롭게 한다는 냉소가 보수층에서 더 짙어지고 있는 추세다. 홍 대표발 개헌 연기가 민심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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