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1987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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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5   |  발행일 2018-01-15 제31면   |  수정 2018-01-15

필자가 군 복무를 하던 1987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소대는 사단 본부 주변 경계와 유사시 5분 안에 출동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어느 날 훈련이 아닌 실제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사단 본부 인근에 위치한 대학생 병영 교육대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의무적으로 1주일간 전방 체험 교육을 받아야 했던 대학생들이 교육을 거부하고 집단 농성을 벌인 것이었다. 그들의 병영 이탈을 막기 위해 투입된 소대원들이 보였던 격한 반응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대부분 고졸 출신이었던 소대원들은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며 대학생들이 병영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흠씬 패줄 것이라고 별렀다.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으나 군 생활에 길들여졌던 탓인지 필자도 소대원들의 감정에 상당히 동화됐던 것 같다.

필자 역시 대학 2학년 때 동료들과 함께 전방 입소 교육을 받았는데 고분고분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분위기였다. 그랬기에 후배 대학생들이 왜 농성을 벌였는지 의아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였다. 군대에서 TV나 신문을 못 봐 알지 못했던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제대 후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

알다시피 1987년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됐던 해였다.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 등이 도화선이 돼 불붙은 6월 항쟁은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국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른바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의 결실을 거둠으로써 군사 정권의 영구집권 음모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런 격동의 시기였기에 전방에 끌려온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생 군사훈련이야말로 전두환 정권이 저항의 싹을 짓밟기 위해 만든 대표적인 꼼수였지 않은가.

요즘 영화 ‘1987’이 화제를 불러 모은다. 개봉 2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할 만큼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전두환 독재 정권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고발하고 이에 맞서는 민주 항쟁의 뜨거웠던 순간을 생생히 담아냈다는 점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1987년에 분출됐던 국민적 분노와 용기에 힘입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30여년이 흘렀어도 온전한 풀뿌리 민주주의 시대는 열리지 않은 듯 하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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