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선진국의 조건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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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5   |  발행일 2018-01-15 제31면   |  수정 2018-01-15
[월요칼럼] 선진국의 조건
허석윤 논설위원

올해는 분명 지난해보다 희망적이다. 개인의 사정이야 각자 다르겠지만 나라 전체로 봐서 그렇다는 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인해 최악으로 치닫던 남북관계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금씩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중국과의 사드 갈등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경제 분야 역시 수출 활황에 힘입어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진입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이에 대해 정부도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만큼 달성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민소득 3만달러는 자랑스러워 할 일이다.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큰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 거두게 될 결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6·25전쟁이 끝난 1953년 우리의 국민소득은 67달러였다. 당시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소득이 낮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그로부터 65년 만에 국민소득이 무려 45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은 세계 경제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성장 신화다. 더구나 우리는 규모를 갖춘 선진국 기준이라는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인구 5천만명 이상)에 속하게 된다. 현재 ‘30-50클럽’에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6개국만 포함돼 있는데 한국이 세계에서 7번째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로부터 놀라움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샴페인을 터뜨릴 처지가 아니다. 실제 소득이 3만달러에 훨씬 못미치기 때문이다. 이 통계대로라면 웬만한 3~4인 가구의 연간 소득이 1억원 내외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영 딴판이다. 왜 그럴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1인당 국민소득은 전체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GNI)을 인구수로 나눈 것이기에 부의 양극화가 심할수록 수치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특히 상위 10% 부자가 전체 국민소득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평균 소득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국민소득 지표의 맹점은 이외에도 또 있다. 모든 국민소득을 달러화로 계산하면서 생기는 환율 변동에 의한 착시효과가 그것이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1천원을 조금 넘는 수준인데, 이 같은 저환율은 국민소득을 높이는 핵심적인 외부 변수로 작용한다. 반대로 만약 환율이 급등한다면 국민소득도 곤두박질치게 된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론상 이렇다. 우리나라가 올해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했더라도 1천원인 현재의 환율이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처럼 2천원까지 치솟는다면 국민소득은 1만5천달러로 졸지에 반토막 나게 된다. 반대로 환율이 500원까지 떨어지면 국민소득은 저절로 6만달러가 될 것이다. 물론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환율에 의한 명목소득의 왜곡은 곱씹어볼 일이다.

누구나 알만한 이런 사실을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선진국 강박증 탓에 겉만 번지르르한 숫자 놀음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자는 뜻이다. 물론 세계 6위의 수출 규모와 최고의 인터넷 보급률, 높은 교육 수준 등 선진국에 부합하는 지표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여러 체감지표들을 보면 한국이 과연 선진국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요즘 우리 경제가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지만 수출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10%대의 청년실업률과 1천4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는 작금의 경제 불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가늠케 한다. 이는 또한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소득증대가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도 혜택을 준다는 낙수효과가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한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경제분야만 발목을 잡는 건 아니다. 4류 정치 탓에 더욱 그렇겠지만 대다수 국민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너무 낮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과 자살률, 최장 노동시간, 구멍난 사회안전망 등의 문제를 내팽개쳐두고 선진국이 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특히 양극화는 치명적이다. 이대로라면 한국이 선진국이 된다고 해도 그것은 일부 선택받은 계층에만 해당될 것이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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