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새해에는 먼저 문화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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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5   |  발행일 2018-01-15 제30면   |  수정 2018-01-15
어떤 형태의 제도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나지만
문화는 활화산의 진원지
得心해서 정치를 제치고
현재서 미래를 선취한다
[아침을 열며] 새해에는 먼저 문화로부터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

문화라는 말은 고상하지만 현장에서는 무력하다. 신문에서조차 정치, 경제, 사회 기사가 비중있게 다뤄진다. 문화 기사는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문화면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들 생각한다. 물론 나름의 정당성은 있다. 독자나 시민들이 정치적 빅뉴스에 가장 민감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우리 삶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먹고살기 위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한 관심도 높다.

지금까지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정치보다 경제가 우선이었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살게 하기 위해서는 경제문제가 선결돼야 한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국가의 지표도 경제로부터 시작하여 정치, 사회, 문화의 순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계획경제에만 목매던 사회주의는 그 경제 때문에 망했고, 시장경제를 고집하던 자본주의가 정치를 내세워 순위를 고수했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라는 순서가 자리를 굳혀 나갔다.

조용하지는 않았다. 아주 시끄러웠다. 노동착취라며 핏대를 올렸고 인간소외라는 논리도 폈다. 소란은 있었어도 세계는 자본주의와 후기자본주의, 심지어 이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기세가 등등하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정치이념이 참 정치형태의 모습인가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인성을 표방하나 내재적인 모순이 너무 많다. 양극단 중의 하나가 남북한의 정치행태와 경제구조다. 북쪽에서는 경제 때문에 인민이 굶어죽는다고 아우성이고, 남쪽에서는 적폐청산이라는 정치적 문제로 시끄럽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형태의 제도에서도 ‘문화’란 정치 경제에 밀리고 사회에도 밀려 후순위로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문화는 하찮은 것이고 별 볼 일 없는 것인가! 먼저 한류를 보라. K-pop을 보라. 세계 젊은이들이 곳곳에서 어떤 춤을 추고 있는지! 그들은 한국의 정치행태도 모르고 경제지표도 모른다. 그냥 그들은 말춤을 췄다. 말춤은 그들로 하여금 세계를 들뜨게 했다. 가장 무력하고 하찮은 문화가 전 세계를 휘어잡은 것이다. 당장의 현실에서는 무력해 보이지만 문화의 힘은 활화산의 진원지와 같다. ‘방탄소년단’이 그렇다. 그들은 2017년 한 해에만도 9번씩이나 굵직굵직한 수상을 했고 급기야는 빌보드 뮤직어워드 톱 소셜아티스트 상까지 받았다. 앳된 20대의 그들이 사회적 편견과 억압에서 벗어나 방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자신들의 고유한 율동적 음악과 새로운 가치를 당당하게 표현해내면서 한국의 역동성을 ‘문화’로 승화시켰다. 세계가 열광했다. 단순한 pop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극찬한다. 코리아의 붐은 이미 1960~70년대 독일의 차범근에 있었고 일제치하의 손기정 때도 있었다. 어찌 그들뿐이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명언이다.

분명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다. 프로이트의 성본능인 무의식(id)이 그 전체의 90%라고 하니 고고한 초자아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하찮은 것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고 후순위가 결코 후순위가 아니라 1순위이고 그 전체임을 깨닫게 한다.

성경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도 나온다. 정치는 득세하는 데만 눈독을 들이나 문화는 득심(得心)하는 데서 정치를 제치고, 현재에서 미래를 선취한다. 문화 자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나 어디에나 있어 각(覺)하는 사람들에게만 현실로 다가온다.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현실이다.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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