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바다이야기’와 ‘비트코인’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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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5   |  발행일 2018-01-15 제30면   |  수정 2018-01-15
盧정부 때 유사파친코 열풍
허술한 대응으로 정권 부담
文정부 가상화폐 광풍 직면
초기대응 미숙과 혼선 노출
정책역량이 열의 못 따라가
[송국건정치칼럼] ‘바다이야기’와 ‘비트코인’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0년대 중반 ‘바다이야기’ 파동이 있었다. 바다이야기는 파친코 게임의 일종으로, 물고기 같은 특정 모양이 연속 등장하면 상품권을 줬다. 상품권은 인근 타인 명의 환전소에서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했다. 당첨확률 조작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사람들을 영업장에 끌어모았다. 결국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자살도 속출했다. 파동 초기에 단속이 느슨하자 정권 핵심 실세가 바다이야기 게임기 업체와 유착됐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확인된 건 없다. 정부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미 피해자가 100만명에 달한 상황이었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140여명을 사법처리했다. 피의자 중엔 조직폭력배뿐 아니라 공무원, 국회의원 보좌관 등이 포함됐다. 민심이 흉흉해지고 정권 연루설까지 제기되면서 바다이야기 파동은 노무현정부에 큰 부담이 됐다.

지금은 ‘가상화폐’(암호화폐) 열풍이다. 300만명가량의 국민이 하루에 수조원어치를 거래한다. 바다이야기와 가상화폐는 경기침체 속에서 ‘대박’의 꿈을 꾸는 중산층과 서민이 열광하는 점이 닮았다. 특히 가상화폐는 인터넷 거래에 능한 2030 젊은세대가 전체 거래자의 60%가량이다. 주식시장과 달리 폐장시간이나 상·하한가 제한이 없어 등락폭이 엄청나다. ‘흙수저’로 태어났다는 자괴감을 갖는 서민층 2030 세대가 경제적 신분상승의 마지막 기회라며 매달리기도 한다. 자칫 바다이야기 사태를 넘는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 상황이 이쯤되니 당연히 정부가 나서고 있다. 산업자본이 가상화폐 거래로 옮겨가고, 거품이 붕괴될 경우 개미들이 큰 손실을 입어 사회문제가 될 개연성이 큰 까닭이다. 특히 노무현정부 사람들이 대다수인 문재인정부에선 바다이야기 트라우마 때문인지 가상화폐시장 개입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정책역량이 열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박상기 법무장관이 지난 1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거래소 폐지를 목표로 ‘가상화폐거래금지특별법’을 추진 중이라고 언급하자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1코인당 2천100만원 하던 비트코인은 곧바로 1천550만원대로 25% 급락했다. 날벼락을 맞은 청년들은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 몰려들었고, 박 장관 발언 후 7시간 만에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특별법 제정이 확정된 건 아니다. 부처 조율 후 최종 결정할 방침”이라고 설명하고 나서야 2천만원대를 회복했다. 여기서 심각한 수준으로 허약한 정책역량들이 발견된다. 정부 안에선 가상화폐 거래규제를 놓고 ‘강경론’(법무부·금융위원회)과 ‘신중론’(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 맞섰다고 한다. 이 경우 청와대나 국무총리실이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데 그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전에 덜컥 법무부 입장이 발표됐다.

또 법무부는 지난 연말 가상화폐규제 정부TF의 주무부처를 맡았지만 장관의 말 한 마디가 가상화폐시장, 나아가 사회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이는 곧 노무현정부 때 꼬리표처럼 붙어다녔던 ‘아마추어 국정운영’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국정사안이 속출할텐데 이런 행태가 되풀이되면 큰일이다. 더구나 이번 혼란이 일어나자 여권 일각에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콘크리트 지지층인 2030 세대가 등을 돌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는 말이 들렸다. 선거가 다가온다고 여전히 지지층만을 의식한 정치적 판단에만 매몰된다면 아마추어리즘에 국정철학 부재까지 겹치면서 나라가 총체적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11일 하루 동안 가상화폐가 널뛰기한 이유를 여러 각도에서 심각하게 검토해야 민심의 널뛰기를 예방할 수 있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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