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부역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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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3   |  발행일 2018-01-13 제23면   |  수정 2018-01-13

새마을운동 초기의 농촌에는 부역이 일상화됐었다. 마을 진입로 청소나 신작로변 풀베기, 골목길 닦기 등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은 주민들이 손을 보태 해결해야 됐기 때문이다. 부역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공공단체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해 보수 없이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노역을 말한다. 부역 일거리가 생기면 집집마다 한 명은 반드시 나와야 해 휴일이면 나가기 싫은 어린 학생들을 억지로 내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군사정권 당시 대통령의 지방 행차는 요란스러웠다. 잘살고 깨끗한 농촌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대통령이 지나가는 도로변의 환경정비는 필수였다. 미처 걷지 못해 논에 날리는 비닐이나 길옆 담장의 지저분한 모습도 권력자에게 보이면 안됐기에 공무원들이 나서서 치우고 단장을 했다. 이러한 사례가 반복되면서 타성에 젖은 농민들은 도로변 농경지 등의 뒤처리는 방관하는 경향도 생겨났을 정도가 됐다. 지금은 국민의 수준이 높아져 이러한 작태도 사라지고 권력자들도 언감생심 생각도 못할 일이다.

최근 많은 눈과 함께 강추위가 찾아오자 산천은 물론 도심 뒷골목도 눈 천지가 됐다. 주요 도로는 자치단체에서 일찌감치 제설작업을 한 덕분에 차량통행에 지장이 없지만 뒷골목이나 이면도로는 채 녹지 않은 눈으로 미끄럽거나 지저분한 곳이 많다. 자주 눈이 내리는 문경시는 제설 대책이 다른 곳보다 잘돼 있는 편이다. 제설 전용 차량 외에도 청소차에 장비를 부착해 치우기도 하고 마을마다 트랙터 등 농기계를 활용하는 곳도 있다. 시내 인도는 공무원들이 새벽부터 동원돼 눈을 치워 시민의 불편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문경시는 눈이 올 경우 내 집 앞은 스스로 치우자는 운동도 펼치고 있다. 많은 시민이 동참하고 있지만 일부 시민은 아무리 많은 눈이 내려도 치울 마음조차 내지 않는 듯하다. 자치단체에서 하거나 이웃의 누군가가 치워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럴 때 예전의 부역 동원령이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발상일까. 내 집 앞 눈 치우기는 관련 법도 제정돼 있고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조례로 만들기도 했지만 강제력은 사실상 없다. 결국 주민 스스로 나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아직은 기대난이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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