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대구은행 박 행장의 이상한 인사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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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2   |  발행일 2018-01-12 제23면   |  수정 2018-01-12
[조정래 칼럼] 대구은행 박 행장의 이상한 인사

대구은행 박인규 행장이 지난해 말 인사를 단행했다. 총 4명의 등기임원 중 자신을 제외한 3명을 일약 해고하는 파격적인 인사였다. 상품권 할인을 통한 비자금조성 등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아온 사건에 대해 공동책임을 지는 모양새로 전례 없는 인사권 행사였다. 딱 여기까지라면 인사 막전막후 얘기가 담을 넘을 일이 없다. 박 행장의 인사가 결단을 넘어 음모의 연기를 피운 결행이었기에 외부에까지 일그러진 모습으로 파열된다. 반대파 제거 내지는 숙청의 혐의가 짙고, 책임을 전가한 전형적인 보신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조직보다는 일신의 안위만 챙겼다는 노조의 지적은 대구은행 안팎에서 수긍을 얻는다.

무엇보다 박 행장이 자신을 제외한 등기임원(노성석 DGB금융지주 부사장, 임환오·성무용 대구은행 부행장) 3명 전원을 해임한 것은 어떤 명분에 앞선 보복에 가깝다. 공동책임을 지기로 했다는 해임의 사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조직 내부의 관행으로 사법기관의 수사를 받게 되면 통상 조직의 수장이 최종 책임을 지면 족하다. 책임을 분산하거나 ‘공동’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되면 그건 책임 떠넘기기고, 나아가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무책임의 오류를 낳게 된다. 인사권 행사는 은행장이자 지주사의 회장으로서 고유의 권한이긴 하다. 하지만 잠재적 차기 행장 후보들을 모조리 찍어낸 것은 권한의 과잉 행사이자 보복이다.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보인 대구은행의 대처 내지 박 행장의 처신은 정정당당하지 못했다. 경찰 수사가 내부의 권력 다툼 과정에서 내부자의 제보에 의해 터져나왔다는 시각과 분석 자체부터 함정이 있다. 전 임원의 통화내역을 보고하게 하는 등의 홍역을 치르는 것은 조직의 불안정성을 대내외에 표방하는 일이었다. 설령 그랬다 한들 어디 내부자 색출이 그렇게 시급했단 말인가. 해프닝으로 넘길 수만 있다면 부끄럽지나 않지. 일부 몰지각한 간부들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을 당시에도 내부 고발자 운운했다는데…. 반성과 성찰보다는 오만이 앞자리를 차지하니, 아무래도 대구의 대표기업으로서 대구은행의 자격은 재심 대상이라 하겠다.

수사에 대한 항변과 불만은 지나쳤다. 박 행장이 본인과 함께 비자금 관련 수사를 받고 있는 당사자들을 조직을 대표하는 임원이나 주요 부서장으로 발탁했다. 이는 곧바로 탈탈 털어봐야 나올 게 없다는 자신감을 넘어 경찰의 수사를 무시하는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기실 경찰의 수사는 상품권 할인 관행 외에 개인적 비리를 규명하기에는 역부족일 거라는 관측이 대세였다. 하지만 관행이라고 해서 다 면죄부를 받는 건 아니다. 나쁜 관행은 단죄를 받아야 하고, 거기에 연루됐다면 ‘하필 나만, 재수 없게’라는 억하심정을 터뜨리기보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다는 사명감으로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게 조직인의 의무이자 도리다.

대구은행 박 행장의 이번 인사는 차기 행장 선임과 직결되는 조직개편이라는 점에서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등기임원을 다 정리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했다는 것은 차기 행장 추천권을 공공연하게 행사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박 행장의 파격 인사가 위기를 기회로 탈바꿈시키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작용한다면 이러쿵저러쿵 입 댈 이유도 없다. 그러나 권한의 남용으로 해석될 여지가 더 농후하니 문제인 거다. 혹여 그로 인해 시중은행 회장들의 막강한 권한과 권력을 제어하려는 문재인정부 금융당국의 간섭을 불러들이지나 않을까 우려도 크다. 주총을 통한 주주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은 현실에서 정당하지 않은 인사는 정부의 개입을 부를 수도 있다.

박 행장의 지난 인사는 조직보다는 개인을 앞세운 인적 청산이라는 뒷공론이 잦아들지 않는다. 주주의 동의는 물론 대구시민의 신뢰를 얻기에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수근거림이다. 행장도 지주 회장도 한 사람의 권한대행일 뿐이다. 은행 내의 그 누구도 주주의 이익과 이해, 공동체적 원칙과 정당성을 훼손해선 안된다. 그의 선택은 개인적 이해에 휘둘렸다. 인사권은 차기 행장에게 넘겨주거나 아니면 최소한에 그쳐야 했다. 인사에 대한 불신이 조직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질까 두렵다. 박 행장의 남은 선택 또한 관심사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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