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단맛의 저주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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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0   |  발행일 2018-01-10 제31면   |  수정 2018-01-10

설탕은 기원전 4세기에 인도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327년 알렉산더대왕이 인도를 원정했을 때 알렉산더 군대의 사령관 네아르쿠스 장군은 벌의 도움 없이도 갈대의 줄기에서 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는 사탕수수를 가리켜 꿀벌 없이 꿀을 만드는 갈대라고 했다. 우리나라에 설탕이 처음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때 당나라를 통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국내 역사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명종 때 이인로의 ‘파한집’에서다. 당시에는 설탕이 약으로 쓰이거나 왕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귀한 음식이었다. 일반인이 달콤한 설탕 맛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1920년 평양에 사탕무를 원료로 하는 제당공장이 세워지면서부터다.

인류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귀한 대접을 받던 설탕이 요즘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대량생산으로 소비가 급증하자 예상치 못한 갖가지 부작용이 불거져 ‘하얀 흑사병’ ‘소리 없는 살인자’라는 오명까지 듣고 있다. 무엇보다 습관적으로 당분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비만과 당뇨병, 관상동맥질환 등 만성질환을 일으킨다. 우울증·불안장애 같은 정신장애는 물론 알츠하이머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결과다. 더구나 지난주 나온 연세대 생화학과 백융기 특훈교수팀과 세브란스병원 김호근·강창무 교수팀의 공동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나치게 단 음식을 많이 먹으면 췌장암·위암·간암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설탕의 습격이 무서운 이유는 니코틴·알코올·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번 빠져들면 여간해서는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설탕중독은 신체적·심리적 원인에 의해 끊임없이 단것을 찾아 먹는 행동으로 정신과 진단명으로 명시돼 있을 정도다. 문제는 1970년대 이후 모유수유는 줄고 당분이 높은 분유수유가 급격히 늘면서 젊은 세대들이 태생적으로 설탕중독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서양국가에는 못 미치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당분 섭취도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2015년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에 따르면 한국인의 당류 섭취량은 61.4g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탄산음료와 가공식품이 넘쳐나면서 2013년 기준 한국 남자 청소년의 비만율은 OECD 평균보다 높은 26.4%를 기록하고 있다. 과도한 당류 섭취가 몰고 올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보다 강도 높은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WHO가 공식 권고하고 핀란드·멕시코·노르웨이·영국 등이 도입한 설탕세 부과도 논의해볼 만하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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