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무술년의 ‘버려진 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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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0   |  발행일 2018-01-10 제31면   |  수정 201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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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엄동설한에 버려진 들개’.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되고 난 뒤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하겠다면서 내던진 말이다. 9년 동안 온실에서 검·경의 비호를 받는 여당 의원의 신분으로 호의호식하다가 졸지에 과반수에도 못 미치는, 무기력한 야당 의원 신세로 전락했으니 엄동설한에 먹이를 찾아 눈밭을 헤매고 다니는 들개라는 자학이 들 만도 하겠다. 들개임을 자처하고 나선 탓인지 김성태 의원이 연초부터 정부여당을 향해 쏟아내는 말에는 증오와 분노가 부글부글 끓는다. “안하무인” “버르장머리” “오만방자” “방약무인” 걸리기만 하면 인정사정없이 물어뜯고 말겠다는 태세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UAE 특사방문과 관련하여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는 결기에 대해서는 같은 당 소속의원으로부터도 “정신나간 소리”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다. 김성태 의원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증오와 분노는 순진무구한 초등학생에게까지 뻗치고 있다.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그려져 있는 초등학생의 그림을 달력 배경그림으로 쓴 은행으로 우르르 떼 지어 몰려가 규탄집회를 하고, 달력의 소각을 요구한 것이다. 빨갱이 놀이도 정도가 있지 하다하다 이제는 초등학생의 그림까지 물어뜯을 지경이니 그 몰골들이 한심하다 못해 측은하기까지 하다.

올해 환갑이 된 무술년 개띠들을 중심으로 한 베이비붐 세대들은 어릴 때부터 정부는 물론 학교로부터도 증오와 분노를 강요받은 세대들이었다. 그림을 그려도 글을 쓰더라도 북한에 대한 증오와 원한·분노를 담아야만 상을 받을 수도 있고 또 매질을 피할 수 있던 세대들이었다. 유월이 오면 거의 모든 학교에서는 ‘반공포스터 그리기’가 숙제였고, 반공포스터그리기 대회까지 열리기도 했다. 우수작품이라 선정되어 학교 복도에 게시된 그림들은 한결같이 전쟁을 묘사하는 것이었고 포스터 속에 들어가 있는 구호는 ‘상기하자 6·25’ ‘규탄한다 김일성’ ‘박살내자 북괴군’ 외에 다른 구호를 쓸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 세대들이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어 무대에서 내려올 때가 된 지금, 미래의 주역이 될 그들의 손자·손녀들이 휴전선 넘어 북측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증오의 시대도 함께 저물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트집 잡고 있는 그 그림은 남과 북의 화해와 공존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는, 천진하고 순수한 아이의 발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북에서는 남측 아이의 소망에 화답이라도 하듯 평창 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을 기꺼이 파견할 모양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인공기를 앞세우고 평창올림픽 선수촌에 입촌하는 북한 선수들을 향해 ‘북으로 돌아가라!’ 태극기를 휘두르며 시위라도 할 작정인가?

그뿐 아니다. 주권자인 시민들의 항의문자에 ‘ㅁㅊㅅㄲ’라고 화답하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홍준표 대표는 자신이 ‘주막집 주모’라며 내친 전 여성 최고위원과 당내 행사에서 누가 먼저 손을 잡고 ‘주물럭’거렸나를 놓고 온 세상이 들어라 앙앙불락 다투고 있다. 자당 소속 친박 실세 두 의원이 저지른 범죄행각에 대해서는, 그리고 자신들이 주군으로 모셨던 전직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로 옷을 사 입고, 기치료를 하고, 수하들의 용돈을 챙겨주었던 사실에 대해서는 한마디 논평도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서.

그런데 권력상실에서 오는 허탈감, 그에 따른 분노와 원한, 시기와 질투에서 촉발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집단 히스테리를 다독거리며 전열을 재정비해야 할 책임이 있는 홍준표 대표가 먹이를 찾아 느닷없이 대구를 기웃거린다고 한다. 홍 대표가 무술년 정초에 개꿈을 꾸었는지 용꿈을 꾸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대표의 그런 어처구니없는 처신에 대해 소속 당원들로부터도 “졸장부의 약아빠진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누구든 사흘을 굶고 나면 무슨 짓을 못할까마는 어찌하다 대구가 ‘버려진 들개’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먹잇감으로까지 전락해버렸는지 개띠해 정초부터 개탄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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