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헌정사

  • 마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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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9   |  발행일 2018-01-09 제31면   |  수정 2018-01-09

제헌 70주년을 맞는 올해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개헌이다. 현행 헌법의 개헌 논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촛불집회 이후 대통령 탄핵과 이에 따른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이후 본격화됐다. 정치권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기 위한 정부 형태(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6·13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때를 맞춰 지방에서는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는 사무권한과 재정을 지방정부에 대폭 넘겨주는 지방분권형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됐다.

1948년 헌법이 제정된 후 첫 개헌은 1952년 6·25전쟁 와중에 임시수도 부산에서 이뤄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임기 연장을 위해 직선제를 도입하는 게 목적이었다. 2차 개헌은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이 전 대통령의 영구 집권 계획의 일환이었다. 당시 가결 정족수인 3분의 2에 1표가 모자랐지만, 소수점 아래는 반올림한다는 ‘사사오입’의 억지 논리까지 내세워 한국 정치의 흑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3·4번째 개헌은 4·19혁명 이후 사회 재정비를 위해 진행됐다. 3차 개헌에서는 내각책임제와 양원제가 도입됐고, 4차 개헌에서는 3·15부정선거 관련자 처벌을 위해 소급적용을 허용하는 헌법부칙이 추가됐다. 5~7차 개헌은 모두 군부 독재의 권력 유지를 위한 개헌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쿠데타 이후 5차 개헌으로 직선제를 도입해 본인이 당선됐고, 6차 개헌에서 대통령 3선 연임을 허용해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국민의 저항이 거세지자 7차 개헌으로 유신헌법을 공포해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고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과 법관·국회의원 임명권 등 초헌법적 권한을 부여했다. 8차 개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뒤 국회를 해산한 상태에서 이뤄졌는데 핵심은 대통령 간선제 도입이다. 마지막 9차 개헌은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물로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냈다.

이 같은 헌정사에서 보듯 9차례의 개헌 중 국민이 투쟁으로 주도한 것은 4·19혁명과 6월항쟁 후의 개헌뿐이다. 나머지는 집권자의 정권유지 또는 정당화를 위해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이뤄진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촛불의 힘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이뤄질 이번 10차 개헌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지 관심사다. 마창성 동부지역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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