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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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9   |  발행일 2018-01-09 제31면   |  수정 2018-01-09
[CEO 칼럼] 집 이야기
정홍표 홍성건설 대표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기술인으로 20여 년 일했다. 지금은 중견 건설사의 대표로서 역시 건설인으로 살고 있다. 그동안 적지 않은 건축물의 시공에 직접 참여하였으며 지금도 회사의 여러 공사 현장을 관리하면서 우리가 사는 주거 공간의 변화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있다.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아파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20~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들에게 집은 일반 주택을 의미하였으며 특히 농촌 지역에서 집은 당연히 담장이 있고 마당이 있는 가옥이었다. 지붕의 형태가 기와이거나 슬레이트인가, 아니면 간혹 초가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주택이 집이던 시절이었다.

공간구성으로 보더라도 아파트는 엄밀히 말하면 집안, 즉 실내 공간만이 집이지만 그 당시의 집은 좁은 실내 공간뿐만 아니라 넓은 마당, 텃밭, 마구간, 닭장 등 여러 실외 공간이 있었다. 또한 집의 기능 면에서도 숙박과 휴식 기능이 대부분인 아파트와 달리 예전의 집 마당은 낮에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여름밤에 멍석이나 평상을 깔면 가족들의 테라스가 되고 야외 식당이 되었다. 마당과 붙어 있는 텃밭과 닭장은 어머니들의 식단 도우미 역할을 충분히 하였으며, 주택과 붙어 있는 창고(고방) 열쇠는 시어머니의 권위였다. 집 안은 좁기도 하였고, 방마다 여러 식구가 함께 살았기에 부족함이 많았지만, 가족 간에 소통과 이해를 배우기에는 유리한 면이 있었다. 또한 마을마다 어느 집의 사랑방은 동네 사람들의 저녁 모임과 놀이 장소로 제공되기도 하였다. 나아가 그 당시에는 개인의 집에서 결혼식과 장례식까지 치렀으니 지금의 아파트와 비교하면 기능적으로도 많은 더함이 있었다.

최근 젊은 세대가 점점 이기적이고 사회인으로서 소통과 대화, 타협 능력이 부족하다는 걱정이 많다. 이는 사회 발전과 변화에 따른 시대적 흐름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변화가 영향을 미친 부분도 크다고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면 바로 자기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버리고, 아버지 역시 밤늦게 퇴근하여 자기 방으로 들어가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머니 역시 자기 공간에서 하루를 보낸다. 가족들은 크지 않은 공간인 아파트 속에서 또다시 자기만의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으며, 이곳을 잘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따라서 가족들 간의 대화는 점점 적어지고 어느 시점에는 아침 식탁에서 대화조차도 타인처럼 의례적인 이야기 소재밖에 찾지 못하게 된다. 또한 프라이버시 존중이라는 포장으로 지인이나 먼 친척은 고사하고 가까운 형제들도 집에서 함께 하룻밤을 보내기보다는 게스트 하우스나 인근 숙박 시설로 보내는 시절이 되고 있다.

주택 예찬론자로서 지금도 변두리 도시 주택에 살고 있고 주변인들에게 탈(脫)아파트를 많이 권유하고 있지만, 어차피 우리나라 여건상 대부분이 아파트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아파트에 살더라도 집의 기능에 대해서는 그 옛날의 주택을 돌이켜 볼 수는 있다고 생각된다. 가족 각자의 프라이버시 존중보다 가족의 소통을 중시하는 배치와 구성, 때로는 싸움이 되더라도 대화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형제가 방문하면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서라도 한 집에서 하룻밤 잠을 잘 수 있는 우리들의 마음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 각자의 방에서 자고 나면 가족이 거실에서 모이는 것이 당연시되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만지더라도 함께 있는 장소에서 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생각된다. 고급 아파트에 아무리 멋진 인테리어를 하여도 가족의 이야기가 없다면 호텔과 다르지 않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가는 곳은 집이 아니고 가족에게 가는 것이다. 집은 그 옛날처럼 가족의 만남의 장소이고 놀이터이며 응원과 대화의 장소여야 한다. 집은 숙박과 휴식의 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집은 하우스(house)가 아니라 홈(home)이어야 한다.
정홍표 홍성건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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