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다시 ‘균형’을 말한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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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8   |  발행일 2018-01-08 제31면   |  수정 2018-01-08
[월요칼럼] 다시 ‘균형’을 말한다

웰빙 시대를 웅변하듯 슈퍼푸드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별별 희한한 먹거리가 슈퍼푸드로 회자되지만, 우리가 평소 상식하는 음식 중에도 슈퍼푸드는 많다. 시금치·양배추·콩이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식품도 한 가지만 계속 섭취하면 외려 건강을 해친다. 콩을 집중해서 먹으면 몸속의 요오드를 방출시켜 탈모 현상을 유발할 수 있고, 신장 기능이 약한 사람은 칼륨 함유량이 많은 시금치·바나나의 과다 섭취를 삼가야 한다. ‘균형 있는 식단’이 최상의 건강식이라는 의미다.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귀 따갑게 들은 “편식하지 말라”는 말이 정곡을 찌르는 건강비책이었던 게다.

‘균형’은 정치와 외교에도 유효하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기울어져가는 명나라 동아줄만 잡았던 인조의 패착과 아집이 결정적 단초였다. 광해군은 명나라·후금과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균형을 유지했다. 만약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두 번의 호란(胡亂)은 겪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

대한민국 헌법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이다. 이 조항을 관통하는 화두(話頭) 역시 ‘균형’이다. 한데 헌법 119조 2항은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땐 사실상 사문화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난 균형이란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참모들은 대통령의 의중을 금방 헤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균형발전위원회의 명칭이 지역발전위원회로 바뀌었다. ‘균형’을 쏙 빼버린 것이다. 대통령이 균형을 싫어한다는 말의 파급력은 컸다. 단순히 지역균형발전위원회의 명칭이 바뀌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건 국가균형발전의 측면에서 보면 역주행의 시작이었다. 노무현정부에서 주춤했던 수도권 규제완화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상수원 보호구역과 군사시설 보호구역이 대폭 해제됐다. 그 혜택은 주로 경기도 등 수도권에 돌아갔다. 수도권 산업단지 내의 공장 신·증설 조건도 완화됐다.

수도권 일극 정책의 화룡점정은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였다. 박근혜정부도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비롯해 수도권 일극주의 기조를 고스란히 답습했다. 무려 10년의 지역균형발전 빙하기가 이어졌다. 수도권과 지방의 간극은 더 벌어졌고 심지어 수도권 대학 출신과 지방대 출신 근로자의 임금 격차까지 심화됐다.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 소득 양극화, 이념 양극화로 치닫는 상화하택(上火下澤)의 형국일수록 균형의 가치는 더 절실하다. 양극 세력을 아우르고 접목할 처방이 ‘균형’이기 때문이다. ‘균형’은 분열과 반목을 치유할 통합의 묘약이기 때문이다. 또 균형이란 말은 매우 은유적이다. 정의·평등·약자보호라는 함의가 녹아 있다. 정의의 여신 디케(Dike)도 균형을 상징하는 천칭을 한 손에 들고 있지 않은가.

지역균형발전을 중시한 노무현정부의 맥을 잇는다는 점에서 문재인정부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문 대통령은 이미 연방제 수준으로 지방분권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은 서로 부합하거나 상호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국가균형발전이 10년의 퇴행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 이유다. 지역발전위원회 명칭이 지역균형발전위원회로 복원된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지역균형발전 외에도 ‘균형’으로 접근해야 할 부분이 많다. 총수요를 견인할 소득주도 성장과 공급부문의 효율성을 높일 혁신성장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근로자 임금을 높여 소비를 진작하겠다는 포석도 기업의 활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까닭이다. 노동 개혁과 경제 활성화법안 처리도 마냥 뭉개선 곤란하다. 2018년엔 균형의 가치가 온 누리에 고루 퍼지고 착근되길 소망한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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