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사자성어의 함의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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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8   |  발행일 2018-01-08 제31면   |  수정 2018-01-08

사자성어(四字成語)는 한자 넉 자로 이루어진 단어를 일컫는 말로, 주로 중국의 고사(故事)에서 유래한다. 특히 논어·맹자 등 사서오경은 사자성어의 보고(寶庫)다. 단, 넉 자 속에 천 길 깊이의 은유(隱喩)와 사유(思惟)를 담을 수 있는 응축력은 사자성어만의 진가다. 촌철살인의 풍자도, 정당과 기업의 새해 화두도 사자성어 하나로 가능한 이유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매년 교수 1천명의 설문을 통해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는데, 한 해 동안의 사회 동향과 국정 풍향을 오롯이 담아내는 통찰력이 압권이다. 20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 2017년엔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 정권교체와 적폐청산으로 숨 가쁘게 이어진 시국이 네 글자 속에 농밀하게 녹아있다.

새해를 맞아 각 정당이 밝힌 사자성어엔 나름의 각오와 포부가 묻어난다. 더불어민주당은 마부정제(馬不停蹄·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를 제시했다. 집권당으로서 국정 운영의 드라이브를 걸고 적폐청산도 계속하겠다는 함의가 담겨 있다. 자유한국당은 당 대표실에 걸려 있던 즐풍목우(櫛風沐雨·바람에 머리를 빗고 비에 몸을 씻는다) 액자를 지난 연말 승풍파랑(乘風破浪)으로 교체했다. 질곡의 세월을 뒤로하고 대해(大海)를 거침없이 헤쳐 나가겠다는 표상이 엿보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를 언급했다. 공교롭게 권영진 대구시장도 시무식 때 ‘봉산개도 우수가교’를 인용했다. 안 대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 권 시장 앞엔 재선 성공과 통합공항 이전이란 쉽지 않은 과제가 놓여 있다. 바른정당은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를 새해 사자성어로 제시했다. 정의당은 ‘배를 부르게 하고 도둑을 잡는다’는 뜻의 포복절도(飽腹絶盜)를 선정했다. 고사에서 따온 게 아니라 노회찬 원내대표가 직접 창안한 사자성어다.

막말이 난무하는 정치판일수록 함의가 농축된 사자성어 인용은 장려할 일이다. 하지만 2011년 홍준표 대표의 의원 사무실에 걸렸던 ‘척당불기(倜不羈)’ 액자를 둘러싼 진실 논쟁은 볼썽사납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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