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영화 ‘1987’에 대한 착잡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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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6   |  발행일 2018-01-06 제23면   |  수정 2018-01-06
[토요단상] 영화 ‘1987’에 대한 착잡한 단상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을 두고 한 지인이 ‘신화화’라 했다. 적절한 지적이다. 지난 겨울의 촛불 집회를 거쳐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지금 대중에 선보임으로써 386세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역사화의 흐름에 하나의 정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애초부터 예견된 것일 수는 없겠지만, 영화가 대중과 만나게 되는 오늘의 역사적인 특성이 이 영화의 신화적인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

영화의 제작에서 개봉 사이에 시대가 바뀌었다는 이러한 외적인 상황을 벗어나도 ‘1987’에는 신화적인 특성이 있는데, 이는 작품이 보여주는 사건의 범위에 의해 마련된다. 이 영화는 박종철 고문치사 및 이를 둘러싼 음모와 그에 맞서는 진실 규명 노력을 다각도로 보여주다가 이한열의 죽음으로 클라이맥스에 오른 뒤, 신군부에 반대하는 수많은 시민의 시위, 그 함성이 서울 한복판을 가득 채우는 순간 종결된다. 여기에 영화의 주요 스토리라인을 이루는 여주인공의 변신이 더해지기까지 함으로써 ‘1987’의 마지막 장면은 87년 6월의 정점을 하나의 순간으로 고착시키고 곧 탈역사화하면서 신화의 색채를 띠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 너머의 신화임은 여러 가지로 증명된다. 이 시민혁명이 끌어낸 최대의 성과인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의 단일화를 이루지 못함에 따라 신군부 정권이 한 차례 더 연장되었다는 저 회한의 역사가 가장 앞에 온다. 여기에 더해서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에 따른 사상계의 변화 속에서 그 빛나던 6월의 정신 혹은 염원이 한갓 후일담의 대상이 되기도 한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이에 더해 IMF 외환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 경제 상황, 곧 경제제일주의의 기치 아래 부의 불평등 심화, 비정규직 양산, 실업률 증대 등의 문제가 지속되는 현실을 보면, 87년의 6월이란 신화로서만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이러한 사정을 없는 듯이 할 수 없기에, ‘1987’이 이 모두를 외면하고 그날의 함성으로 끝맺는 방식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전후 역사에 대한 성찰이나 현재의 전사로서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탐구를 배제하고 있는 ‘1987’이란, 오늘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시대착오적인 산물이거나 저 두 젊은 죽음에 대한 애도, 민중운동까지 상품화하는 문화산업의 위용을 입증해 주는 사례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1987’이 보여 주는 종결 방식은 1930년대의 리얼리즘 소설이 지주의 탐욕에 맞서는 소작농이나, 자본가의 횡포에 저항하는 노동자의 투쟁을 그리면서 즐겨 취하던 방식에 닿아 있다. 리얼리즘 정신에 입각해 있는 이들 작품은 현실에서는 있기 어려운 농민·노동자의 승리를 설정하여 리얼리티를 손상시키는 대신에, 그것이 반영하는 실제 현실에서라면 불가피한 패배 직전의 순간에서 작품을 맺으며 주인공의 다짐을 통해 미래 전망을 환기시키곤 했다. 이를 두고 ‘전망’의 제시라 하는데, 그러한 전망 제시의 형식이 2018년 현재 상황에서 요청되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보면 영화 ‘1987’은 박종철과 이한열에 대한 애도, 혹은 1987년 6월 혁명의 대중문화화 둘 중의 하나를 겨냥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꼭 양자택일일 리도 없다. 애도까지도 하나의 요소로 포함하면서 자신을 문화상품으로 내세우는 것은 아닌가 의심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그 시대를 살아낸 많은 사람이 저마다 다른 빛깔의 가슴 벅찬 울림으로 ‘1987’을 대할 수밖에 없고 바로 그러한 수용 과정에서 문화상품적인 특성이 지워지는 듯이 보인다 해도, 어떠한 역사적 반성도 탐구도 없이 6월의 한순간을 신화화하며 스스로를 맺는 ‘1987’이란 이러한 혐의에서 자유롭기 어려워 보인다. ‘1987’의 관람이 6월에 대한 개개인의 회상이나 과거에 대한 신화적 이해·오해로 축소되기 십상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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