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뮤직톡톡] 한국 최초의 재즈 악단장 백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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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5   |  발행일 2018-01-05 제39면   |  수정 201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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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여름 경성방송국에서 공연 중인 코리안재즈밴드. 왼쪽부터 박건원, 김상준, 최호영, 홍난파, 홍재유, 김원태, 이병삼, 이철, 백명곤. <박성건의 ‘한국재즈100년사’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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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호암아트홀에서 세계적인 재즈밴드 공연을 봤다. 서울역과 가까워 길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이 한나절 만에 공연을 보고 왔다. 새로 지어진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지역 연고 야구팀의 경기를 보며 치맥을 먹었다. 또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직접 공연도 했다. 이 세 장소는 한 대기업의 배려와 지자체의 문화마인드가 합쳐져 완성된 공간이다. 이 대기업이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식객으로 둔 이탈리아 문예부흥의 주역 중 하나인 메디치 가문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이와 유사한 후원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전라도 만석꾼의 아들 백명곤이다. 체육과 문화예술은 물론 주색잡기에도 능했던 그는 한마디로 ‘모던풍류객’이었다. 축구를 좋아해 축구단에 월급을 주고 그의 집에서 숙식하게 했다. 1925년에는 축구단을 이끌고 상하이 원정경기를 하기도 했다. 그는 귀국할 때 한국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물건을 갖고 들어온다. 바로 재즈 악보와 악기였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스포츠 구단주와 밴드 악단장까지 겸임한, 전무후무한 ‘멀티플렉스 문화한량’인 셈이다.

사실 나도 우리 지역 프로야구단의 구단주가 되는 게 꿈이다. 방안에 혼자 누워 얼마만큼의 재산이 있으면 야구단을 운영할 수 있을까를 계산해봤다. 600쪽이 넘는 ‘야구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머니볼’까지 분석했다.

1926년 백명곤은 색소폰을 분다. 그리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홍난파에게 피아노, 나중에 한국의사협회 회장이 되는 박건원에게는 트럼본을 맡기며 8인조 브라스밴드를 결성한다. 이어 YMCA회관에서 제1회 연주회를 열었으니 이게 한국 최초 재즈밴드인 ‘코리안 재즈밴드’다. 당시 대부분의 관객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이 또한 내겐 부러울 따름이다.

백명곤은 가업을 이어받을 생각도 없었다. 그냥 문화예술과 체육부흥을 위해 가산을 탕진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강제로 독일로 유학을 보냈다. 하지만 지병으로 이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를 따라간 몸종 배운성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가 되어 돌아와 지금의 홍익대 미술과 초대 학장이 된다. 백명곤은 엄친아·금수저인 재벌 2세였다.

그래도 술 마시고 변호사 폭행하고 맘대로 비행기를 오라가라며 시대착오적 갑질을 하는 요즘 몇몇 재벌 2·3세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진보적인 인물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926년이면 윤심덕의 ‘사의찬미’가 등장한다. 호남 재벌가의 아들인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뛰어든 윤심덕의 스캔들 여파로 유성기(축음기)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이듬해에는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인 경성방송국(KBS 전신)이 개국한다. 한국 근대음악의 인프라가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 무렵 정말 다양한 서양음악이 밀려 들어온다.

당시 재즈는 지금과 좀 달랐다. 서양에서 들어온 음악장르, 이를테면 팝송은 물론 프랑스 샹송, 이탈리아 칸초네, 심지어 라틴음악까지도 재즈로 통칭되던 시기였다.

1929년 극작가이자 연출가 이서구가 종합잡지 ‘별건곤’에 기고한 ‘경성의 쨔스’를 조금만 읽어 보자. ‘흥에 겨운 곡조를 체통도 염치도 잊어가면서 몸짓, 손짓, 다리짓, 콧짓 그야말로 제멋이 내키는 대로 지랄을 하다시피 아뢰 오는 것을 ‘짜스밴드’라고 부른다.’(중략)

이 꼴을 처음 접한 신사는 그래도 체면을 차리느라고 ‘에이 잡것들…’이란 조소를 던졌다.

1986년쯤인가, 우리 아버지도 TV에서 김완선의 댄스를 보며 혀를 찼다. 그런데 우리 증조부가 짜스 광경을 보셨다면 어디 혀만 차겠는가.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면 신선함과 낯섦이 동시에 분출할 수밖에 없다.

재즈드러머 sorikong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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