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혁의 중년 남자 이야기] 중년, 예술을 만나다(하)-클래식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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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5   |  발행일 2018-01-05 제39면   |  수정 2018-06-15
나이듦, 클래식에 위로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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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회현역 지하상가의 중고 레코드점을 찾아 구경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중고 레코드를 구입할 수 있다. 작은 사진은 그곳에서 구입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음반들. 대부분 3대 소나타인 ‘비창’ ‘월광’ ‘열정’을 연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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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직장에서 주로 듣는 베토벤 음반과 턴테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이 크게 유행했던 적이 있다. 너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다 보니 이제 시들해졌지만, 한창때는 TV만 켜면 나왔다. TV와 거의 담 쌓고 사는 필자도 S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종종 시청하곤 했다. 천재성을 갖춘 젊은 친구들의 도전과 노력을 보다 보면 감동의 눈물이 흐를 때도 있었다.

그러곤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20년만 젊었더라면 나도 저 자리에 설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음악에 천부적인 자질을 갖춘 건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다양한 음악에 노출되다 보니 음악은 생활의 일부였다. 사촌 누나들에게 동요보다 올드팝을 먼저 배웠다. 단칸방을 전전하던 신세에도 전축을 덜컥 구입하신 철없는 아버지 덕에 배호와 나훈아의 노래를 들으며 컸다.


중년이 되면서 갈수록 떨어지는 청력
아이돌그룹 노랫말은 귀에 안 들어오고
혹 마음에 드는 曲은 따라 부르기 숨차고
노래방 애창곡마저도 박자 놓치기 일쑤

그제서야 가만히 다가온 클래식과 조우
‘딴 행성 사람의 사치품’ 선입견과 달리
같은 곡이라도 상황 따라 카멜레온 매력
편하고 오랜 벗처럼 일상 매 순간을 함께



서태지에 열광했고, 탱고도 좋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민중가요도 접했다. 힙합, 헤비메탈, 라틴 음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음악이 없었다면 삶은 얼마나 건조할 것인가. 그럼에도 귀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장르가 딱 한 가지 존재했다. 바로 ‘클래식’(고전음악)이다. 중년 남자 이야기, 오늘의 주제는 클래식과 연애를 시작한 중년이다.

대학 다닐 때 학생회관에 가면 고전음악 감상실이 있었다. 그곳을 찾는 유일한 이유라면 강의 중 비는 시간 동안 거기만큼 잠자기 좋은 곳이 없어서였다. 아무 곡이나 틀어놓고 헤드폰을 끼기만 하면 수면제보다 빠른 효과가 있었다. 그 당시 클래식이란 이해의 차원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 작곡가와 음악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혼돈의 영역이었다.

막걸리에 두부김치를 먹던 대학생에게는 관현악이란 일종의 고급스러운 사치품처럼 느껴졌다. 정장 차림으로 푹신한 소파에 기대 와인을 홀짝이고 한껏 멋을 내며 들어야 어울릴 것 같은 이질감.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명품의 취향이랄까? 클래식은 필자와는 다른 행성의 사람들이 향유하는 기호품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갈수록 떨어지는 청력 탓인지 아이돌 그룹의 가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노래가 있어도 따라 부르기에는 숨이 찬다. 예전만큼 심금을 울리는 노래도 드물다. 노래방 애창곡 중 하나였던 드렁큰 타이거의 ‘8:45’는 박자를 놓치기 일쑤다. 이제 꼼짝없이 늙는구나, 느낄 때 클래식이 가만히 들려왔다.

갱년기의 증상인지 사소한 일에도 울컥하는 내게 누군가 클래식을 권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무작정 들어보라고 했다. 귀도 얇은 데다 요즘 음악에는 마땅히 끌리지 않던 때에 괜찮겠다 싶었다. 직장과 집에서 듣든 안 듣든 일단 틀어놓았다. 서서히 마음이 반응을 보였다는 건 거짓말이고, 듣다 보니 클래식이 조금씩 궁금해졌다.

그림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알면서 대하는 것과 모르고 접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베토벤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어려운 교향곡보다는 좀 더 귀에 익은 피아노 소나타부터 찾아 들었다. 하나씩 듣다 보니 베토벤 바이러스의 원곡이 8번 소나타 ‘비창’의 3악장이라는 사실을 마흔 넘어 알았다. ‘월광’으로 유명한 14번 소나타는 베토벤이 붙인 이름이 아니라 평론가에 의한 일종의 애칭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클래식에 조금씩 재미를 느꼈다.

이제 막 입문하는 단계지만 클래식을 들으며 느낀 초보자의 감상 몇 줄을 적어본다. 첫째로, 클래식은 같은 곡이라도 그날의 기분과 심정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비 내리는 울적한 날에는 나를 어루만져주고 흥겨운 날에는 어깨에 힘을 불어넣는다. 음악에 내가 맞출 필요 없이 음악이 나를 따라오는 기분이랄까? 카멜레온에 비유되는 다채로운 느낌이 클래식에는 분명 녹아있다.

둘째는 반복해서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사실 처음 몇 번 들을 때는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듣는다고 느끼지 못했다. 매번 새로운 곡이었다. 그러니 어찌 지겨울 수 있겠는가? 더구나 동일한 곡인데 악장마다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이게 그 곡이 맞나 하고 몇 번을 확인해 보았다. 세대를 달리해도 고전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셋째는 단순 감상용 이외에 어떤 작업과도 잘 어울리는 훌륭한 배경음악이다. 수술실에서도, 화실에서도, 글을 쓸 때도, 하다못해 화장실에서도. 주요 작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은은하게 깔려 환경을 풍성하게 만든다. 빗방울이 창가를 때리고, 잘 내려진 커피에서 김이 오르고, 그 배경으로 ‘G선상의 아리아’가 들려오면 촉촉해진 감성은 시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마지막으로 클래식은 늙어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언제부턴가 사람 많고 혼잡한 곳은 피하게 된다.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혼자 있는 공간이 편하다. 그럴 때 클래식은 마치 오랜 벗처럼 함께해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네 생각이 이러하다는 것쯤 알고 있다는 듯 빙긋이 웃으며 흐른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손잡아 줄 친구 같은 음악.

고전주의니 낭만주의니 분석할 필요도 없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쇼팽 가릴 것도 없다. 집에 굴러다니는 클래식 모음집도 좋고, 유튜브에서 클래식을 검색해서 들어도 좋다. 필자도 처음 접한 것이 큰아이 태교 때 샀던 모차르트 CD였으니. 일단은 당신의 귀에 자주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귀에서부터 가슴까지 전달되어 오는 시간만 견뎌보자.

필자는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악보도 음표도 구분할 줄 모른다. 마흔 넘어 걸음마처럼 배우고 있는 기타가 철들고 만져 본 유일한 악기다. 그럼에도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음악을 늘 곁에 두고 살았다. 그런 맥락에서, 귀로 듣고 머리로 이해하고 몸이 반응하는 그런 음악들보다 한 단계 더 내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클래식을 만난 건 오랜 기다림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클래식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다가 생각에 잠길 때 행복을 느낀다. 지나간 시간들, 스쳐간 사람들, 그리고 기억 자체에 대한 아쉬움들.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해보고 앞으로의 날들도 상상해 본다. 성숙하지 못했던 20대와 외연 확대에 눈이 멀어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 30대.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선 길목에서 여생의 동반자로 클래식이 건네는 두 손을 기쁘게 잡아본다. 그렇게 시작된 클래식과의 연애에 흠뻑 빠져 산다.

칼럼니스트 junghyu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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