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남북관계는 도덕의 세계가 아니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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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3   |  발행일 2018-01-03 제31면   |  수정 2018-01-03
[박재일 칼럼] 남북관계는 도덕의 세계가 아니다

2018년 한국의 운명을 가를 정치적 사안을 꼽으라면 두 가지다. 하나는 ‘박근혜 재판’이고, 또 하나는 ‘북핵 문제’이다. 전자는 내치(內治)에 속하고, 후자는 외치(外治)의 결정판이다. 전직 대통령 재판은 그 귀결이 어떠하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수습해야 할 몫이자, 우리가 앉은 운전대의 범주 속에 들어가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후자, 북핵은 다른 문제다. 아무리 피를 토하고 우리 민족끼리를 외쳐도, 그건 이상(理想)에 가까울 뿐, 우리의 중력 범위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로 끌려간 지 오래다. 여전히 진행형이고, 그래서 걱정이 태산이다.

공자는 정치(政治)를 놓고 ‘다스릴 정(政)’이 아니라 ‘바를 정(正)’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정치를 구현하면서 한편 정의와 도덕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 유토피아를 외치는 이들이 없다면 정치는 어쩌면 그날부터 죽은 생물이 될 것이다.

유토피아를 외치는 이면에는 역설적으로 정치가 현실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현실의 냉혹함이 있기에 꿈꾸는 것이지, 발을 디딘 이 세상에 공기처럼 산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정치는 그래서 도덕의 세계와 구분된다. 정치를 도덕과 뒤섞는다면 그순간 ‘공자왈(曰)’에 그칠 수 있다.

영화 ‘강철비’는 근년들어 유행하는 남북관계를 다뤘다. 정치색이 강하다. 국제정치의 생리를 그런대로 잘 다뤘다.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의 대화는 국내 좌우파의 대립을 복사했다. 북한의 군사 쿠데타에다 전쟁 카드를 꺼내들고 전후 복구 비용의 주판알을 튀기는 미국의 얼굴도 어쩌면 개연성 있는 미래다.

반면 결말은 낭만적이다. 영화는 역시 영화다. 북한이 땅굴로 자신들의 핵폭탄 절반을 비밀리에 남한으로 보낸다. 관객은 한겨레, 같은 핏줄의 단합을 스크린으로 보면서 어쩜 뿌듯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럴까. 우리끼리 손 붙잡고 눈물을 흘리면 통일이 아니라 뭐든 이룰 것 같은 감흥은 마침내 스크린을 튀어나와 현실에 맞닿을까. 단언컨대 국제정치의 속성을 안다면 말도 안되는 설정이다.

예의 김정은 위원장은 평창 올림픽 참여 카드를 꺼냈다. ‘새해 2018년은 공화국(북조선) 창건 70돌의 대경사이고,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이 열리는 것으로, 북과 남이 다 같이 의의있는 해’라며 그 의미를 부여했다. 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뜻도 내비쳤다. 민족화해와 단합, 대화와 내왕의 길을 말했다. 고무적이다. 우리 한반도의 이상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미사일 선물을 종종 미국에 보내주자고 인민을 독려했다. 6차 핵실험도 했다. 이번에도 미국을 콕 찍어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상기시켰다.

따져보면 국제정치 책략의 1번을 구사하고 있다. 적(敵)을 분리하고 장악한다는 ‘divide and rule’이다. 직설하면 이간계(離間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발언 그 순간부터 남한 정치권은 북한의 의도를 해석하는 방식에서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2014년 박근혜 정권 시절,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여하고 또 폐막 즈음에 고위사절단을 김정은 전용기에 태워 보낸 이벤트를 감안하면 북한은 동계 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화해 대화 내왕의 봇물이 터질 것인가.

정치가 도덕의 세계에만 국한돼 있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하나 현실은 아니다. 의문이 속출한다. 3대 세습 북한이 처한 작금의 현실은 화해와 대화, 내왕의 이상향을 맞을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가. 그들이 말하는 ‘강성대국 북한’은 핵무장 버튼으로 세계 최강 미국을 마침내 굴복시킬 수 있을까. 미국은 그렇다 치고 남한이 설령 북한의 핵무기를 인정한다면, 그들 북한은 빗장을 열고 남북이 얼싸안고 전면적 내왕을 허용할 감격적 순간을 허용할 것인가. 나는 솔직히 부정적이다. 북한 문제는 우리끼리 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다. 국제정치의 엄연한 현실이다. ‘순진한 도덕적 낙관론’은 올 한해 남한을 궁지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 다소 걱정스럽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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