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安全圖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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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30   |  발행일 2017-12-30 제23면   |  수정 2017-12-30
[토요단상] 安全圖生
최병묵 정치평론가

제천 화재 참사(12월21일) 직후다. 친구와 스크린골프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해 빈방이 있는지 물었다. “동반자가 남자인가요?” 상상도 못한 질문이었다. “그런 것도 밝혀야 하나요?”라는 반문에 직원은 “아니 그냥 좀 그래서…”라고 얼버무렸다. 여러 번 갔던 곳이지만 그런 방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굽이굽이 좁은 복도를 지났다. 드디어 도착한 곳은 맨 끝 정말 후미진 곳이었다. 왜 동반자의 성별을 물었는지 알 듯했다. 워낙 구석에 있어 비명을 질러도 들릴까 말까 한 ‘오지(奧地)’나 다름없었다.

불안한 느낌이 엄습했다. 지하 2층에 있어 외부로의 ‘탈출’은 원천 불능이었다. 정문은 마침 제천 화재 현장의 2층 여자 사우나 문과 같은 자동문이었다. 눌러야 열리는데 평상시에도 덜덜거린다. 스크린 방에서 정문까지는 멀고 꼬불꼬불해 당황하면 길을 찾지 못하기 십상이다. 살펴보니 열다섯 발짝쯤 앞에 비상구가 있었다. 불도 켜져 있었다. 거기다 ‘목숨’을 맡기고 2시간여 운동을 즐겼다.

서울시청 앞 노래방을 찾았던 기억은 더 참담하다. 1개를 두 개로 나눈 듯이 작은 방이었다. 복도는 날씬한 두 사람이 지나기 어려웠다. 조명은 왜 그렇게 어둡던지. 그날 이후 시청 앞 지하 노래방에 대해서는 필자 스스로 ‘출입금지’를 내렸다.

그러고 보니 되새기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참 많다. 실내 여가활동을 하며 미처 파악하지 못한 위험에 처했던 사례들이다. 스크린골프장, 노래방, 식당과 술집…. 지하에 있는 경우 훨씬 취약했다. 임차료 싼 곳을 찾다보니, 방을 더 만들기 위해, 테이블 좌석을 늘리기 위해, 창고 몫의 공간 확보를 위해…. 좁은 공간을 넓게 쓰려다보니 생긴 일이다. 서민 생계형 매장에서 주로 벌어진다. 넓고 안전한 업장을 확보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던가.

대한민국 사건사(史)에서 세월호 침몰은 빼놓을 수 없다. 오래된 선박, 불법 개조, 평형수 부족, 과적(過積), 무리한 운항, 조종 부실, 선장(船長)의 태만, 관리감독 부실 등 사고가 날 요소를 빠짐없이 갖췄다. 어느 하나만이라도 ‘정상’이었다면 사고가 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설령 나더라도 그렇게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 당국도, 야당(지금은 여당이 됐지만)도, 언론도 ‘세월호 전(前)과 후(後)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정말 달라졌을까.

정부 당국은 검찰 수사를 통해 관련자를 처벌했다. 구조작업을 제대로 못했다며 해경을 해체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공세에 휘말려 아무 일도 못했다. 현재 집권당 주도로 만들어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도 ‘왜 침몰했는가’라는 본질보다 곁가지에 몰입하다 끝났다. 언론 역시 추모 열기가 식자 관심을 꺼뒀다.

제천 참사를 여기에 대입해보자. 건물 불법 개조와 여성 사우나의 협소한 비상구는 정부가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국회가 법을 바꿔 소방차나 사다리차의 진입로 확보를 뒷받침했다면 지금 같은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안전 문제를 끊임없이 추적, 보도하지 않은 언론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짐만 많았지 변한 것이 없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안전 의식은 공기와도 같다. 있을 땐 소중함을 알 수 없다. 공기 없는 세상살이는 상상조차 못한다. 안전 의식도 이래야 한다. 그런데 안전 의식은 생색이 나지 않는다. 아무 사고도 없다면 그게 가장 안전한 사회다. 그냥 운(運)이 좋아 사고를 면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정부와 국회는 국가·사회 안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해야 한다. 재난 관련 공무원들은 유사시를 대비해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 또한 정부와 공직자들만 믿을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안전은 알아서 지켜야 한다. 이래야만 사건·사고가 줄어든다. 간혹 발생해도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만 한다. 표시 나지 않는 일을 위해 헌신할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때까진 각자 안전도생이다.
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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