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두 개의 사랑·일주일간 친구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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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9   |  발행일 2017-12-29 제42면   |  수정 2017-12-29
하나 그리고 둘

두 개의 사랑
쌍둥이와 파격적 삼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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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몇몇 시네마테크를 중심으로 예술영화 소개가 활발해지던 시절 ‘시트콤’(1998), ‘사랑의 추억’(2000),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2000) 등 프랑수아 오종의 작품을 접하며 설렜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 20년간 그가 만든 작품들은 때로는 금기를 깨는 소재와 서사로, 때로는 미학적인 이미지들로 평단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의 폭넓은 작품 세계는 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하는데, 근작인 ‘영 앤 뷰티풀’(2013),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2014) 등은 소재의 파격성에도 불구하고 영상 표현 만큼은 꽤 절제된 작품이었고, 2016년 작 ‘프란츠’는 보기 드물게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드라마였다. 그러나 올해 칸 영화제에서 선보인 ‘두 개의 사랑’은 다시 초기작으로 돌아간 듯한 예측불허의 스릴러다. 지극히 말초적이면서 대단히 지적이고, 무엇보다 대담하다.


금지된 욕망 들춰낸 프랑수아 오종의 섹슈얼 스릴러
초기작 연상되는 예측불허…마린 백트 연기 인상적



‘클로에’(마린 백트)는 우울증과 심인성 위장염으로 정신과를 찾는다. 상담을 받으면서 의사인 ‘폴’(제레미 레니에)과 연인이 되고 동거까지 하게 되지만 우연히 그의 쌍둥이 형제인 ‘루이’를 보게 된 클로에는 깊은 혼란에 빠진다. 같은 얼굴에 같은 직업을 가졌음에도 부드럽고 다정한 폴과 달리, 거칠고 대범한 루이는 다른 매력으로 클로에의 은밀한 욕망을 자극한다.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는 욕망, 소위 판타지, 그로 인한 인간의 내적·외적 병리 현상은 오종의 영화를 비롯해 많은 문화예술 콘텐츠에서 다뤄온 소재다. ‘두 개의 사랑’은 이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보다 구체화하고 현실적으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쌍둥이, 그중에서도 ‘기생성 쌍둥이’라는 의학적 개념을 빌려온다. 기생성 쌍둥이란 본래 쌍둥이 중 한 명의 태아가 발달이 멈추면서 다른 태아와 결합한 희귀 증세를 의미하는데, 클로에의 정신적 질환은 자신 때문에 세상빛을 보지 못한 쌍둥이 자매의 존재에 대한 죄의식을 모체로 한다. 루이의 상담실로 들어갈 때마다 입구에 놓인 거울 앞에서 그녀는 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어도 다른 인격체로 살아가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여러 개의 모습들로 분열되고, 그 분열된 자아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랑을 갈구하게 한다.

쌍둥이 형의 존재를 부정하는 폴, 쌍둥이 형제를 향한 그들 각자의 콤플렉스, 루이와 폴을 갈라서게 한 과거의 결정적 사건과 한 여성의 등장까지 미스터리가 증폭되면서 내러티브는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지는 듯하지만 결말부는 의외로 심플하게 정리된다. ‘두 개의 사랑’은 궁극적으로 클로에가 스스로 병의 근원을 파헤쳐 나가면서 겪게 되는 모험담이라고 할 수 있다. 두려움과 맞서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현상을 직시하면서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는 그녀의 용기가 관객들은 매료시키며 서사를 힘 있게 이끌어간다. ‘극복’이라는 단어는 마지막까지 유보할 수밖에 없지만 ‘성장’은 분명히 느껴진다. ‘영 앤 뷰티풀’에서 자발적 매춘을 하는 도발적 10대로 분했던 ‘마린 백트’가 복잡다단한 클로에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역시나 오종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러닝타임: 110분)


일주일간 친구
7일마다 기억 잃는 여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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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미야’(카와구치 하루나)는 일주일이 지나면 친구에 대한 기억이 모두 지워져 버리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그간 보아왔던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상상력에 견주자면 그리 황당한 설정도 아니지만 다른 것들은 다 기억하면서 친구만 못 알아본다니, 그것도 딱 일주일 간격으로 기억이 리셋 된다니 주인공이 초자연적 비밀을 품고 있는 판타지 장르의 냄새가 강하다. 그러나 ‘일주일간 친구’(감독 무라카미 쇼스케)는 판타지도 아닐 뿐더러 후지미야의 현실적 아픔을 강조하기 위해 이야기를 사뭇 무겁고 진지하게 끌고 간다. 중학교 때 친구로부터 큰 상처를 받은 이후 후지미야는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혼자 등하교를 하고, 혼자 밥을 먹으며 외로운 생활을 한다. 어차피 기억도 못할 친구를 사귀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그녀 앞에 월요일마다 친구가 되어 달라고 조르는 ‘하세’(야마자키 켄토)가 등장한다.


하츠키 맛차의 베스트셀러 만화를 실사로 옮긴 영화
무라카미 쇼스케 감독…두 배우의 풋풋함·‘썸’ 볼 만



영화는 멜로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들로 가득하다. 하세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후지미야의 도서관출입증을 주우며 시작되는 첫 만남부터 후지미야의 기억을 메우기 위해 두 사람이 ‘교환일기’를 쓰게 되고 함께 축제에 가며 친해지는 중반부, 그들 사이에 다른 인물이 끼어들어 관계의 위기를 맞는 후반부, 만화반인 하세가 후지미야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 영화 내내 잘 봉인되어 있다가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 종반부까지 사실상 이 영화만의 독창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후지미야의 ‘일주일 기억력’밖에 없다. 120분을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기엔 사실상 빈약하다. 그럼에도 최소한 두 가지 정도의 미덕은 금방 눈에 띄는데, 첫째는 차가운 이미지 뒤로 보호본능을 유발하는 ‘카와구치 하루나’와 늘 긍정적인 성격에 해맑은 미소를 가진 ‘야마자키 켄토’ 두 배우의 풋풋함이다. 이들은 영화의 톤 앤 매너를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10대가 느끼는 감정의 기복을 장면 장면 적절히 표현해냈다. 두 번째 미덕은 제작자인 ‘이시즈카 요시타카’의 표현대로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라는 관계의 긴장감-우리가 시쳇말로 ‘썸’이라고 일컫는-이 잘살아있다는 것이다.

10대 남녀 사이에 유사한 감정이 흐르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감독 츠키카와 쇼)가 국내에서 46만명을 불러 모으며 다양성 영화로서는 경이로운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동시대 관객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인기 만화가 ‘하츠키 맛차’의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특별한 악역 없이 한 사람의 트라우마를 인정하고 치유해가는 주변인들의 노력과 배려가 가슴에 온기를 남긴다. (장르: 멜로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0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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