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강천산 왕자봉(해발 584m, 전북 순창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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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9   |  발행일 2017-12-29 제38면   |  수정 2017-12-29
“뽀드득 뽀드득”…종일 新雪에 발자국 소리를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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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본 신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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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교 사이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길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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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봉을 잇는 현수교.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눈다운 눈은 아직 내리지 않는다. 겨울산행은 눈이 있어야 제 맛인데 중부권·영동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산에도 눈이 없어 겨울이 깊었음에도 눈을 밟아보질 못했다. 주간예보를 들여다보며 주말에 눈이 올 만한 곳을 찾아보니 서해 일부지역과 전라권에 눈 소식이 있다. 때마침 중·고 동문 산악회인 군성산악회에서 눈이 예상되는 전북 강천산 산행계획이 있어 따라붙었다. 대구를 출발해 광주∼대구고속도로(옛 88고속도로)를 따라 지리산휴게소를 지나자 간밤에 내린 눈이 도로변과 먼 산에 희끗희끗 보이기 시작한다.

눈다운 눈 밟고 싶어 동문산악회 동행
들머리 주차장서 2㎝ 눈에 설레는 첫발
인공 병풍폭포 지나 메타세쿼이아 숲길
깃대봉삼거리 능선 5㎝ 신설에도 꾹꾹

정상인 왕자봉서 직진방향으로 하산길
급경사 돌계단 조심히 내려서자 전망대
신선봉·현수교·금성산성까지 한눈에



들머리가 되는 강천산 주차장에 이르자 바닥에 2㎝가량 눈이 깔렸다. 많은 눈은 아니지만 드디어 첫눈을 밟는다는 설렘으로 차에서 내려 첫발을 내디딘다. 첫눈과의 만남. 의식을 치르듯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디딘다. 제법 뽀드득 뽀드득거린다. 상가를 지나 매표소부터는 아무도 밟지 않은 신설(新雪)을 골라 디디며 경쾌하리 만큼 싱그러운 발자국 소리에 취한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인공폭포인 병풍폭포를 지나면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이어진다. 주차장에서 10분쯤 지나 금강교를 건너면 바로 오른쪽에 커다란 안내도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깃대봉삼거리 1,000m’로 적은 오른쪽 숲으로 들어 깃대봉, 정상인 왕자봉을 한 바퀴 돌아내려오는 코스를 잡는다. 눈길에 발자국 몇 개가 찍혀있다. 어림잡아 세 명 정도가 앞서간 듯하다. 계곡을 벗어나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중간중간 자연석을 다듬어 계단을 만들어 두었지만 발 디딤이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덧신을 신 듯 아이젠을 착용할 만큼의 눈은 아니어서 미끄럽지만 그냥 오른다. 사람이 간사하기는 눈 산행을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아이젠을 찰까말까 하는 생각이 걸음걸음마다 떠나질 않는다.

30분쯤 지나 능선 위에 올라선다. 이정표에 ‘깃대봉 삼거리, 왕자봉 1.6㎞’로 적은 깃대봉 삼거리다. 이정표 방향대로 왼쪽 평탄한 능선을 걷는데 능선에는 5㎝가량의 눈이 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수한 충청도 말투의 산객이 쉬고 있다. 그 틈을 타 앞지르니 그제야 아무도 밟지 않은 신설 위에 오롯이 우리 일행들의 발자국을 남긴다. 많은 눈이라면 서로 앞서가기를 꺼려 하지만 오히려 발걸음이 더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10분 정도 경사가 완만한 길을 지나 작은 봉우리에 오르니 깃대봉 이정표가 서있는데 사방이 숲에 가려 조망은 없다. 깃대봉에서 내려서면 키 높이의 산죽 숲 사이로 걷게 되고, 능선은 오른쪽으로 휘어져 잠시 평탄한 길을 걷다가 가파른 경사구간이 시작된다. 남쪽 방향으로 걷게 되는데 나목의 긴 그림자가 바닥에 깔린 눈 위에 가지런하다. 바쁠 것 없다. 겨울 산을 향유하며 쉬엄쉬엄 오르니 작은 헬기장. 여기가 형제봉과 왕자봉이 갈라지는 왕자봉 삼거리다. ‘왕자봉 0.2㎞, 형제봉 삼거리 0.78㎞’로 적은 이정표가 서있다. 형제봉으로 가면 왕자봉을 올랐다 되돌아 나와야 하고, 왕자봉을 지나 현수교로 가려면 왕자봉을 올랐다가 곧장 내려가면 된다. 일행들은 왕자봉 코스로 길을 잡는다. 7분 정도 오르니 커다란 정상석이 놓인 왕자봉이다. 10년쯤 전 이 봉우리를 올랐을 때에는 앙증맞은 정상석이 있었는데 지난해에 새로 놓은 것이다. 정상석 바로 옆에 삼각점이 놓여있고, 돌무덤 같은 탑이 세워져 있다.

정상에서 오르던 길에서 직진 방향으로 하산길이 선명하다. 5분쯤 내려서자 능선에서 왼쪽으로 직각으로 꺾인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길게 로프가 매어져 있고, 급경사의 돌계단이 이어진다. 다행히 햇살을 받아 반쯤 눈이 녹은 상태라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발 놓을 자리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잠시 내려서자 데크를 깐 전망대 위에 선다. 정면으로 신선봉과 그 아래에 놓인 현수교가 내려다보이고, 오른쪽은 산성봉에서 시루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도열해 있다. 그 가운데 산성봉 주변을 둘러싼 금성산성이 산허리에 띠를 두른 모습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도 가파른 계단은 계속된다. 로프를 매고, 계단을 새로 정비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눈이 많거나 얼어붙으면 오르내리기에 쉽지 않은 구간이다. 30분쯤 내려서니 다소 완만한 길이 이어지는데 산허리를 따라 산죽이 빼곡하게 자란다. 길은 넓어지고, 정면의 작은 바위봉우리를 돌아나가니 신선봉으로 건너는 현수교가 놓여있다. 현수교 앞에서 왼쪽 계단을 내려가면 곧장 강천사로 갈 수 있고, 현수교를 건너 신선봉을 올라도 되고, 현수교를 건너 바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다. 현수교를 건너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잡는다. 출렁이는 현수교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단풍나무 위에 내린 눈이 아직 소보록하다.

현수교를 내려와 계곡 상류는 구장군폭포와 조각공원으로 오르는 도로이고, 아래쪽은 강천사를 지나 메타세쿼이아 길을 통과해 30분이면 주차장에 닿을 수 있다.

첫눈 치고는 적은 양이지만 온종일 신설을 밟으며 유유자적 노닐고도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다.

대구시산악연맹 이사·대구등산아카데미 강사

apeloil@hanmail.net

☞ 산행길잡이 주차장-(10분)-금강교-(30분)-깃대봉 삼거리-(50분)-헬기장-(7분)-강천산 왕자봉-(50분)-현수교-(15분)-강천사-(10분)-주차장

강천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에 속하는 산으로 가을철 단풍산행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겨울 산행지로는 한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최근 광주∼대구고속도로가 확장 개통되면서 시간적으로 가까워져 영남권에서도 찾는 이가 많다. 왕자봉·형제봉을 지나 한 바퀴 돌아 나와도 하루 산행이 여유롭다. 소개한 코스는 약 8㎞로 4시간 남짓 소요된다.

☞ 교통 광주∼대구고속도로 순창IC에서 내려 좌회전으로 792 지방도로를 따라 팔덕면소재지를 지나 약 3㎞를 더 가면 왼쪽으로 ‘강천산’ 돌 표석을 보고 좌회전으로 들어가면 곧 강천산 주차장이 나온다.

☞ 내비게이션 전북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길 66-8(강천산 주차장 치안센터)

☞ 볼거리 강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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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다. 887년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1316년 덕현(德賢)이 오층석탑과 12개 암자를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이 절과 12개의 부속암자가 전소되었다. 1604년 태능(太能)이 중창해 강천사만은 이전의 면모를 갖추었다. 유형문화재 제92호인 대웅전 앞 오층석탑, 강천사 앞 길섶에 300년이 넘는 모과나무가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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