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過而不改(과이불개)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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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6   |  발행일 2017-12-26 제30면   |  수정 2017-12-26
임 실장 UAE출장 온갖 說 난무
대통령 訪中 성과 설전도 비슷
절체절명의 북핵 위기 앞에서
삿대질 정치만 해대는 정치권
불안감과 울분 뒤섞여 올라와
[화요진단] 過而不改(과이불개)
이재윤 경북본사 총괄국장

누구에게나 허물이 있다. 모르면 물어보고, 틀리면 고치고, 잘못했으면 뉘우치면 된다. 쉽다. 말은 쉬운데 그게 어렵다. 모르면서 우기고, 틀린데 잘 고치지 못하고, 잘못한 것을 어설프게 합리화하려는 게 보통사람의 사는 방식이다. 그러다 더 큰 화를 당한다. ‘잘못한 사실보다는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농반진반의 충고는 실제 절절한 경험칙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국정농단 사건의 시작이 그랬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UAE(아랍에미리트) 방문 논란도 마찬가지다. 시중엔 매우 심각하고 걱정되는 온갖 설(說)이 난무한다. 미확인 정보가 SNS를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사안의 성격상 진위 여부는 곧 밝혀지리라 본다. UAE 원전 공사가 수개월째 중단되고 있는 게 사실인지, 중간 공사비의 지급 여부는 어떻게 됐는지, 계약해지 통보가 실제로 있었는지, 그것이 탈원전 선언과 판도라 상자(리베이트)를 들여다본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덮는다고 덮어지는 사안이 아니다. 문제는 그 뒤다. 밀린 공사비가 어마어마하고, 그게 소송으로도 받기 힘들다고 한다. 이미 국내 기업들이 UAE에 쏟아부은 돈이 수십조원에 이르는데 원전 사업이 중단될 경우 이를 견딜 기업들이 몇이나 될지 걱정이란 거다. 2·3차 협력업체는 물론이고 수천명에 달하는 공사인력은 또 어찌 될 지 문제다. 사실이라면 예상 피해가 우리 경제 전반을 뒤흔들 만한 심각한 규모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사실 무근이다. 현재 정상적으로 공사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논란을 확산시킨 데는 청와대 책임이 크다. 북한 인사 접촉설, 이전 정부의 비리 연관설, 원전 리베이트설, 탈원전 선언 관련설 등에 청와대의 속 시원한 답변은 없었다. “모든 추측성 기사와 야당이 주장하는 내용은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거나 “UAE와 관계가 좋았는데 박근혜정부 들어 소원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언급은 다급히 특사를 파견한 이유로는 충분치 않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해명은 어처구니없다. 외교부 장관이 대통령 특사의 행적을 모를 만한 사안이 도대체 뭔지 더 궁금하다. 당사자인 임 실장은 귀국하자마자 휴가를 가버렸다. 국민들은 ‘뭔가 있구나’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숨기거나 어설프게 거짓부렁했다가는 주워담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뒷마무리가 너무 서툴러 사안의 본질이 뒤틀리고 있다. 풍문이 사실이 아니고, 특사 파견으로 문제가 깔끔히 해결됐다 하더라도 솔직한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통령의 방중 논란도 비슷하다. 극과 극을 오가는 뒷담화가 이렇게 무성한 정상회담은 본 적 없다. 회담 결과에 120점을 준 것은 지나친 자화자찬이요 낯 뜨겁기까지 하다. 구걸외교·조공외교라 폄훼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삼전도 굴욕에 빗댄 비난까지 나오다니. 스스로 국격을 훼손하는 자해(自害)와 다를 바 없다. 모두 비정상적 언사다. 진지한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절체절명의 북핵 위기 앞에 삿대질 정치공세만 해대는 정치권이 여간 개탄스럽지 않다. 풍전등화의 국가위기에도 당쟁에 골몰한 퇴락(頹落)한 조선 말 조정이 자꾸 연상된다. 불안감과 울분이 뒤섞여 올라온다.

이번 방중은 성과가 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악화일로를 치닫던 한·중 갈등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정도다. 대통령이 환대를 기대하고 중국에 간 것은 아니다. 어쩌면 홀대를 각오했을 지도 모른다. 예견된 한계에도 사드 피해 해결에 한시가 급했고, 북핵 문제와 평창올림픽도 발등의 불이었다. 평가는 다르고 비판도 할 수 있다. 수모를 당해가며 얻어낸 결과가 고작 이거냐는 지적도 가능하다. 그러나 홀대가 있었다면 항의는 중국 측에 하는 게 옳다. 한반도 운명의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등골 서늘한 경고와 압박이 거세지는데, 안에서 쪽박 깨는 삿대질만 해대는 꼴이 이어지면 주변 열강의 비웃음거리가 된다. 중국의 무례도 막을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위기 앞 분열은 잘못 돼도 크게 잘못이다. ‘잘못이 있어도 고치지 않으니 그것이 진짜 잘못이다.’(過而不改(과이불개) 是謂過矣(시위과의)-논어)
이재윤 경북본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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