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임종석 UAE行 미스터리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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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5   |  발행일 2017-12-25 제30면   |  수정 2017-12-25
대통령 특사로 간 비서실장
파견목적 놓고 증폭된 의혹
靑은 오락가락 본인은 침묵
소통으로 지지받는 정부면
국민앞 설명해 의혹 풀어야
20171225

궁금증은 커져만 가는데 당사자는 말이 없다. 당사자를 대신해 입을 연 사람들은 계속 말을 바꾼다. 다그쳐 물으면 “잘 모르겠다”며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다른 곳도 아닌 국정운영의 심장부 청와대에서, 그것도 대통령 비서실장의 외국 출장과 관련해서 최근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2박4일 일정으로 아랍에미리트(UAE)와 레바논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다녀왔다. 청와대는 처음엔 임 실장이 두 나라에 파견된 아크부대와 동명부대 격려를 위해 간 김에 정부 고위 인사들과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아크부대와 동명부대는 한 달 전에 송영무 국방장관이 격려 방문을 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졌다. 이 때문에 임 실장이 중동지역에서 북한 당국자를 만나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게 아니냐는 ‘대북 특사설’이 나왔다. 임 실장은 전대협 의장 출신으로 1989년 임수경 방북을 성사시켰고 대북 관련 사업도 했기 때문에 그럴듯했지만 청와대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연이어 일부 언론과 야당 의원들은 ‘MB 비리 추적 관련설’ ‘국교단절 압박 무마설’을 제기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UAE로부터 20조원짜리 원전 건설을 수주했는데, 이 과정에서 리베이트 수수가 있었는지 뒷조사를 하다가 UAE 왕실의 심기를 건드려 사과하러 갔다온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에 청와대는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요청하면서 격하게 반응했다. 그러는 사이 합리적 의심이 갈만한 새로운 팩트들이 드러났다. 임 실장이 UAE의 실질적 통치자인 모하메드 왕세제(王世弟)를 만나는 자리에 칼둔 UAE 원자력공사 이사장도 배석한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청와대는 당초엔 임 실장과 모하메드 왕세제가 악수하는 사진만 기자실에 제공했다가 이 사진이 공개되자 칼둔 이사장은 겸직하고 있는 아부다비 행정청장 자격으로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또 2008년에 한전 해외자원개발 자문역을 맡았던 서동구 국정원 1차장이 그 자리에 있었던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원전을 MB정부에서 수주하고 그때까진 관계가 좋았으나, 박근혜정부 들어 관계가 소원해졌단 말이 있어 국익 차원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두 차례 UAE를 방문했고, 54조원짜리 원전운영권을 따냈기 때문에 이 대목은 진실 확인이 중요하다. 하지만 기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소원해졌느냐’고 묻자 그 관계자는 더이상 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들이 우왕좌왕하며 메시지 관리를 못하고 있음에도 당사자인 임 실장은 침묵하고 있다. 더구나 국회의 청와대 비서실 소관 상임위원회인 운영위에서 이 문제를 따지겠다며 전체회의를 소집하자 임 실장은 나흘간 휴가를 냈다. 휴가 복귀 이후에도 미스터리 특사 파견을 둘러싼 소문들이 꼬리를 물지만 여전히 말이 없다.

실제로 임 실장이 해외파병 장병들을 만나 문재인 대통령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러 갔을 수도 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 뭔가 틀어진 일이 있어서 그걸 해결하러 갔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실 그대로를 국민에게 설명하면 된다. 청와대는 왕실 관계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공개하는 건 외교적 결례라고 하지만 지금처럼 의혹이 증폭되는 국내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 될 일이다. 혹은 합리적 의심을 품는 일들이 사실일 경우에도 국민에게 진솔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 방식이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최우선 가치로 치는 문재인정부답고, 불통으로 실패한 박근혜정부와 구별되며, 국민이 보내는 높은 지지에 보답하는 길이다.

송국건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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