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문재인과 홍준표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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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2   |  발행일 2017-12-22 제23면   |  수정 2017-12-22
20171222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이후가 무섭다. 중국은 팔짱을 끼고 관전하고 있는데 우리는 치고받으며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시진핑의 입이나 다름없는 중국 관영 언론은 한국언론에 훈수를 두고 ‘싸움 말리는 시누이’ 역할을 자처하며 우리의 부아에 불을 지른다. ‘문 대통령 방중 폄훼는 자살골 넣는 행위’라고. 한국을 대하는 중국의 오만이 도를 넘었다. 조선의 산하를 유린했던 청의 말발굽보다 더 오싹하다.

우리의 저자세는 인조의 삼전도 굴욕 저리 가라다. 누구를 위한 두호인가. ‘남한산성’의 두 주역, 주전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은 서로 주장하는 바는 정반대였지만 최소한 사직과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당리와 당략은 국내용이어야 한다. 그것이 국경을 넘으면 형제자매를 매도하는 매국행위로 둔갑한다. 국민의 눈에 비친 중국의 홀대는 안하무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 정부가 소국으로서 당하는 설움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자세를 보였으면 좋았으련만. 여야의 공방이 무의미하고 청와대의 억지춘향은 안쓰럽다. 구걸외교, 조공외교라는 쓴소리가 국민의 귀에만 쟁쟁한가. 제 할 말만 하는 소모적 정쟁은 고질적 망국병이다.

한중관계를 보는 시각은 엇갈릴 수 있다. 국가 간 외교안보 문제는 복잡다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자명한 사실, 중국측 경호원에 의한 대통령 수행기자 폭행사건은 구구한 해석조차 불허한다. 누가 뭐래도 그것은 문 대통령과 대한민국이 집단폭행을 당한 사건이다. 10여명의 경호원이 기자 한명을 복도로 끌고가 집단폭행한 것이 어떻게 ‘긴박한 상황’에서 이뤄진 ‘경호원의 정당방위’인가. 극성 지지자들이 어불성설에 억지 논리를 덧대 언어농단을 해봤자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꾸는 부질없는 자기비하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과 대한민국’이 시진핑과 중국의 발에 짓밟힌 사실은 여실하다.

참담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대비책이 나오게 마련이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말했는데 시진핑 주석은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응수했다. 시 주석은 ‘지금 모두가 아는 이유로 중한관계는 후퇴를 경험했다’고 대못을 박았다. 이쯤되면 문 대통령은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귀국하거나 최소한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만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런 대접을 받았다면 어떠했을까 상상이 어렵지 않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동네 조무래기들 간의 관계에서도 화를 내야 할 때 일갈도 못한다면 영원히 호구잡히게 마련이다. ‘묻지마 지지’에 의한 왜곡과 마사지, 그리고 견강부회는 문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두 번 죽이고 ‘정부와 상관없다’는 중국의 오만을 한껏 부추기는 이적행위다.

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토대로 한 중화주의(中華主義)는 갈수록 드세질 터이다. 중국은 외교노선을 도광양회(韜光養晦·힘을 애써 감추고 힘을 비축함)에서 주동작위(主動作爲·제 할 일을 주도적으로 함)로 급선회하고 있다. 사드 압박을 언제든지 재개하고 보복의 칼날을 들이대겠다고 공공연히 협박까지 하고 나서는데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중국의 위협과 윽박지름은 상수로 등장했다. 이에 대응한 우리의 외교적 자세와 지평은 부실하다. 중국은 한반도를 변방의 동이(東夷) 조공국으로 영원히 묶어두자는 속내를 주저없이 드러낸다. 한시바삐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인식과 대처는 영 미덥지 않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방일 북핵외교 역시 좁은 틀에 갇히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방일이 ‘매국외교’라는 날선 비판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어떤 명분이나 실리를 끌어대더라도 궁색하고 협량하기 짝이 없다. 하필 대통령의 방중과 겹치는 방일 시기는 고춧가루 뿌리기란 오해를 살 소지가 있고, 아베 총리 앞에서 대통령의 방중을 폄훼한 것은 ‘알현’ 논란과 함께 자해외교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열강이 각축하는 동북아의 위기 속에 국민의 안전과 국익을 지켜내야 할 대표적인 여야 지도자인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당리당략에 휩쓸려서야 국가가 어디로 가겠는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보고 가는 호시우보(虎視牛步)가 아쉽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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