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대구가 심장수술을 못한다니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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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0   |  발행일 2017-12-20 제31면   |  수정 2017-12-20
[박재일 칼럼] 대구가 심장수술을 못한다니

10여년 전 머물렀던 미국의 클리블랜드는 5대호(湖) 중 하나인 이리호에 인접한 미 대륙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인접 시카고, 디트로이트, 피츠버그와 함께 2차대전을 수행한 도시다. 철강·기계·자동차가 강점인 이들 도시는 전쟁의 특성에 맞는 무기 산업의 원천이었다. 도시가 번성한 배경이다.

추신수 선수가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로 뛴 클리블랜드는 화려했던 한때의 시절을 뒤로하고 다소 쇠락한 도시가 됐다. 섬유산업으로 1960~70년대 한국 수출을 주도했던 대구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그래도 클리블랜드는 미술관이 유명하다. 한해 수억달러의 미술품 구입비용의 상당부분을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클리블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미국내 톱클래스다.

무엇보다 클리블랜드는 의료도시로 재도약했다. 미국 3대 의료도시에 속한다. 심장병 수술은 미국내 1위다. 미국 1위가 세계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을지 상상해보라. 현지 교포가 전해준 얘기인데, 아랍에서 왕세자인가 와서 심장병 수술을 했다. 호텔에 머물며 수술을 무사히 마쳤는데 돌아가면서 자신을 돌보던 간호사에게 몇 캐럿인지 모를 다이아반지를 놓고 갔다. 현지 신문에 대서특필됐다고 한다.

실제로 클리블랜드 도심은 병원과 호텔로 가득차 있다. 호텔과 병원이 결합한 개념(Hospitel)을 나는 이때 알았다. 호텔에서 자고 병원과 연결된 통로로 나가 바로 진료를 받는다. 도심 버스를 타면 종종 흰 가운을 입은 이들을 차안에서 볼 수 있다.(가운을 왜 입고 돌아다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이란 탁월한 의과대학이 있다. 대구의 의료인들도 이곳에서 몇몇 만났다.

매사추세츠 보스턴은 하버드 대학이 있는 곳이다. 하버드 인근에는 MIT공대가 있다. 두 대학은 보스턴의 심장이다. 인상적인 건물이 도시 곳곳에 산재한다. 종합병원, 어린이병원을 포함해 모두 하버드 소속 혹은 연계된 병원들이다. 하버드 의대는 미국내 부동의 1위 의과대학이다.

도시가 잘 되려면 의식주가 편해야 한다. 산업도 있어야 한다. 그 중 생명과 연계된 의료서비스는 핵심이다. 세계적 병원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보스턴은 뉴욕과 그렇게 앙숙처럼 메이저리그 야구(보스턴 레드삭스 대 뉴욕 양키스)를 즐길 수 없는 도시가 됐을 것이다.

2009년을 전후로 필자가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 관련 기사를 줄기차게 쓴 것도 그런 연유다. 첨복단지는 거의 충북 오송으로 갈 뻔하다 대구와 반분해 유치됐다. 첨복은 신약, 의료기기, 임상실험을 핵심으로 한다. 첨복 유치는 MB정부란 정치적 덕을 본 것도 부인하기 어렵지만, 사실 대구의 의료 인프라가 오송과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대구에는 경북대, 영남대, 계명대, 가톨릭대를 비롯한 대학병원이 즐비하다. 고3 학생들이 유독 의대를 고집하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시내 번화가에는 건물마다 병원이다. 이런 인프라를 썩힐 수는 없다.

도시나 한 나라의 저력이 의료의 질로 판명된다면 과장일까. 이국종 교수가 외상진료센터 예산을 내려달라고 그렇게 난리를 치고,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에 나라가 떠들썩한 것은 생명과 이를 보장할 의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영남일보에 10년 뒤엔 대구에서 심장수술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뉴스가 게재됐다. 충격적이다. 돈 안되는 흉부외과에 전공의가 지원하지 않는단다. 현재 대구지역 심장수술 전공의는 10여명, 그나마 지원자가 점차 줄어 10년 뒤엔 씨가 마를지도 모른다는 예측이다. 의료도시 ‘메디시티(Medi City)’를 지향한다는 대구가 정말 추락하기로 작정한 것인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즈니스적 개업의(開業醫)에 몰두하는 의사들의 편향, 엄청난 노동과 의술이 소요되는 외과수술에 대한 낮은 보상, 그리고 표피적 성과에만 몰두하는 정부정책이 뒤섞여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비단 대구만의 현상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바로잡아야 한다. 인간이 모여 정주하는 도시가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첨단의료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메디시티 대구를 포기하면 안된다. 심장은 뛰기 싫다고 멈추는 장기가 아니다. 대구는 그렇게 쉬지 않고 뛰어야 한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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