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특정인에게 특혜 주는 지자체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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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0   |  발행일 2017-12-20 제30면   |  수정 2017-12-20
혈세 들여 만든 체육시설
46만 구민 의사 무시하고
소수 동호인 독점하는 건
단체장 용인없이 불가능
침묵의 다수 힘없지 않아
[동대구로에서] 특정인에게 특혜 주는 지자체
유선태 체육부장

중학생 시절, 학교 운동장 한편에 철재로 울타리를 세운 테니스장이 있었다. 이곳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학교 주체의 한 축이자 절대 다수인 학생들이 아니라 교사들이었다. 그들의 필요에 따라 출입문에 채워진 자물쇠는 열리고 닫혔다. 1인당 국민소득이 2천달러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되지 않았던 1980년대 초반은 조금이라도 우월적 지위에 있는 소수가 힘없는 다수를 사정없이 눌러버렸던 세상이었다. 사회적 정서는 이같은 횡포를 용인해주었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구 수성구청은 지난해 11월, 범어공원 자락에 수성국민체육센터를 개관했다. 구비 80억원에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국민체육기금 30억원을 지원받아 지어진 센터에는 헬스장과 다목적 강좌실, 실내체육관 등이 있다. 수성구청은 46만여 주민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체육관 시설을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수성구 관내 배드민턴 동호인 700여명이 실내체육관의 절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탁구와 농구 동호인을 위한 공간이 있긴 하지만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배드민턴 동호인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용하는 탓에 ‘주중 실내체육관 대관’은 불가능하다. 배드민턴 동호인들의 센터 점령(?)은 내년에도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대관계약 기간은 1년이다. 이들과의 재계약이 거의 확실하다.

이같은 일은 이진훈 구청장과 수성구청의 ‘특정인 봐주기’ 행정 덕분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범어공원과 인근 시민공원에는 30여년 전부터 10여 개의 배드민턴장이 생겨났다. 불법시설물에다 소음 등으로 인해 이 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원성이 높았다. 수성구청은 2011년, 때마침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기금을 활용해 체육시설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이에 응모해 지원금을 받게 됐다. 이 돈을 구비에 더해 수성국민체육센터를 만들었다.

당시 공단은 지원 사업의 범위를 수영장, 다목적 체육시설, 체육관 복합형 등으로 제한했다. 수성구청은 다목적 체육시설로 쓰겠다며 돈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완공이 되자 배드민턴 중심 시설로 전용했다. 수성구청은 수성국민체육센터 준공에 맞춰 배드민턴 동호회원들이 센터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범어공원 등에 있는 배드민턴 시설을 철거했다. 이 구청장은 당시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구민들을 속였다. “이곳(공원)을 이용한 클럽 동호인들께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공원은 어느 특정인의 것이 아닌 우리 구민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간으로 공익적 차원과 공원 내 불법 시설에 대한 엄정한 법질서 확립 차원에서 행정대집행을 하게 됐다”고.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 구청장과 수성구청은 세금에다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쌈짓돈을 합친 110억원으로 구민들의 체육시설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는 소수의 배드민턴 동호인에게 최고급 시설의 놀이터를 만들어 주었다. 이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기금 사용목적에도 완전히 배치된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은 이 구청장을 묵묵히 따르거나 그의 생각이 실천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구청장과 수성구청이 왜 이들에게 특혜를 줬는지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이들은 특정시기가 되면 표(票)를 가지고 선출직 공무원들과 흥정할 수 있는 힘있는 소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구청장과 수성구청 입장에서는 관리대상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수성구청에 묻는다. 특정 소수에게 공익적 공간을 빼앗긴 다수는 아직도 40년 전쯤의 힘없는 이들로 보이는가.
유선태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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