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수줍은 준표씨’ 대구정치 가능할까

  • 이영란
  • |
  • 입력 2017-12-19   |  발행일 2017-12-19 제30면   |  수정 2017-12-19
홍 대표, TK의 희망 되려면
성완종 리스트 상고심 판결
어떻게 나느냐가 최대 관건
남성우월주의적 이미지까지
깨끗하게 벗겨내야 할 것
[화요진단] ‘수줍은 준표씨’ 대구정치 가능할까
이영란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얼마 전부터 자유한국당 중앙당사 6층 회의실 벽면에 이전에 없던 보수 정당 출신 전직 대통령 사진이 걸렸다.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나란히 건 것이다. 보수진영 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의 ‘역사적 배경’을 당당하게 ‘노출’하게 된 것은 필자가 지난 7월에 쓴 ‘민주당에 있고, 한국당에는 없는 것(7월25일자 30면 화요진단)’이라는 칼럼이 계기가 됐다.

필자는 칼럼에서 수 년 전 더불어민주당에서 당사 입구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흉상을 설치하고, 당대표 회의실 등에는 두 사람의 사진이 걸린 것을 보고 느꼈던 충격을 전하며 보수진영의 좌표를 재정립하려는 한국당의 현주소를 짚었다. 당(黨)의 역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어떤 상징물도 갖추지 않은 한국당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는 의미이고, 자신의 역사를 소홀히 하며 재기의 몸부림을 치는 것은 모래 위에 집 짓는 것과 같다는 질타였다.

그 글이 담긴 신문은 TK 모 의원에 의해 여러 장 복사돼 홍 대표를 포함한 최고위원들에게 회람됐다. 그리고 얼마 후 홍 대표는 “우리 당은 보수 우파 적통을 이어받은 본당”이라며 “건국시대의 상징인 이승만, 조국 근대화의 상징인 박정희, 민주화 시대의 상징인 김영삼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최근 중앙당사는 물론이고 전국 시·도당 사무실에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이 내걸리는 걸로 실천됐다.

홍 대표는 자칭 ‘독고다이’로 검사에다가 험지에서 국회의원 4선을 하고 도지사 두 번 하고 보수당 대통령 후보까지 했다고 자랑하고 있는데, 이번 조치를 보면서 그가 그렇게 될 수 있기까지는 특유의 빠른 판단과 결정이 중요한 역할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홍 대표가 ‘대구 북구을’에서 정치의 마지막 길을 걷겠다고 한다. 많은 친구들이 대구에 있는 데다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동진을 막고 보수의 아성인 대구·경북을 수성하기 위해서란다. 그가 지난 대선 기간 중 처음으로 대구행에 대한 의지를 밝혔을 때 ‘소탐대실’이라며 반대여론이 비등했는데 최근에는 분위기가 상당히 바뀌었다고 한다.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위기에 빠진 TK 정치를 살리기 위해 홍 대표의 대구 정착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TK 국회의원들의 존재감이 없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당내 역학관계 속에서 주류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지역에서도 모래알처럼 결속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구·경북이 언제까지 대선 패배의 트라우마로 인한 박탈감과 상실감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기왕에 그가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뒤를 잇는 ‘TK의 희망’이 되어보겠다고 하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당장은 오는 22일 오후로 예고된 된 홍 대표의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상고심 판결 선고가 어떻게 나느냐다. 대법원이 항소심 무죄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느냐, 아니면 유죄 취지로 판단해 항소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할지가 관건이다.

다른 전제는 그에게 각인되어 있는 성차별적, 이른바 가부장적 남성 우월주의자(male chauvinist)라는 선입견을 벗어야 된다는 점이다.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이 홍 대표를 향해 눈살을 찌푸린다면 진정한 리더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TK 한 정치인은 “실제로는 홍 대표가 ‘퇴폐적인 술문화’를 싫어하고 여성과 눈을 맞추기 어려워 할 정도로 ‘샤이한 스타일’”이라고 귀띔한다. 어쩌면 많은 경상도 남성들처럼 그도 ‘마초적이라야 남성다워 보일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홍 대표가 앞에 놓여진 마지막 ‘허들’을 무사히 넘고 그야말로 TK를 호령하는 ‘키맨’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영란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