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이 겨울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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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8   |  발행일 2017-12-18 제30면   |  수정 2017-12-18
죽음은 인생관·세계관에
인생관·세계관은 죽음에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다
젊음만이 찬미되는 사회
죽음에 대한 생각도 해야
[아침을 열며] 이 겨울의 성찰
박소경 호산대 총장

선풍기며 목침이며 여름 살림을 정리하다가 ‘곧 여름이 올 텐데 어디다 둘까?’ 생각한다. 한해 한해가 참 빠르다. 어느 어른은 동지가 새해 첫날이니 세배 오라고도 했다. 땅 위에 머물다 가는 우리가 알 길 없는, 눈과 얼음 아래서 흙은 새 생명을 틔우려 따뜻한 물을 품고 있다지 않던가. 전 생애에 대한 성찰을 한번 해본다면 겨울 끝자락인 지금이 적당하리라 생각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과 정현종 시인의 시를 좋아한 지 오래됐다. 스무 살에 철학을 선택한 소설가와 시인의 말은 무조건적인 믿음을 준 건 아닌지. 철학은 언제나 옳음을 추구하니까. 나이가 들 때마다 시오노 나나미의 ‘나이를 의식하라’는 말을 떠올렸다. 박경리 선생도 존경한다. 말년의 말씀, “아는 게 얼마 되지 않는데 많이 아는 줄 알았다.” 중환이 오자 곡기를 서서히 끊으며 돌아가셨다는 말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지만, 선생은 우리에게 귀중한 지혜를 물려주었다. 오랫동안 다짐해 온 사생관을 가진 사람이 끝까지 정상적인 뇌 기능으로 사고할 수 있다 한들 가능하겠는가? 죽음의 과정은 삶의 중요한 단면이다.

1926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임종 연구의 개척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죽음의 과정에서 어떻게 느끼는가?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 퀴블러 로스는 자신이 관찰한 200명의 환자 중 세 사람만이 마지막까지 부정하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 후 스캇 펙은 이 단계가 순차적이라기보다는 순환적이고 반복적이었으며, 부정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신을 향한 기도는 ‘타협’이 될 수도, ‘수용’일 수도 있겠다. 소멸로 향하는 두려운 길에서 용기를 청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종교성일 것이다. 심리적·영적 성장은 일생에 걸쳐 여러 시점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바뀌고 도약하면서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경험, 이것이 ‘수용’이 아닐까? 칼 야스퍼스는 죽음에 의해 파괴되는 것은 현상이지 존재 자체는 아니라 했다. “죽음에 직면함으로써 삶의 깊이는 한층 깊어지고 실존은 보다 확실하게 자신을 깨닫는다. 따라서 이는 삶의 완성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던 옛 선조들에게는 나이를 먹는 일과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죽음을 자연현상의 하나로 받아들인다면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은 채 순응과 화해로 자연의 섭리에 따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철학적 인간학을 구축한 막스 셸러에 의하면, 모든 인간에게는 삶을 이루는 일정한 양의 시간이 할당되어 있다. “나는 단지 시간적으로 제한된 세상사에 참여한다. 즉 나는 언제인가 이 세계로 ‘들어온 것’처럼 다시 이곳을 ‘떠날’ 것이다.”

죽음이 사람들의 인생관과 세계관 형성에 깊이 영향을 끼치듯이, 인생관과 세계관의 차이에 따라 죽음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그래서 삶을 사는 태도와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비슷해지게 되는 것이다. 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말이 있다. 욕구·욕망을 지나치게 탐하는 문화 속에 살면서 삶에 취해 ‘나의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아도 되는 건지? 미국과 독일, 일본은 죽음에 대한 논의가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아직 금기로 에워싸여 있어 무척 조심스럽다. 젊음만이 찬미되는 사회에서 잠시나마 가벼움을 인식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면서 이 글을 적는다. “인간은 한 줄기의 갈대, 자연 속에서 가장 연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없애기 위해 온 우주 전체가 동원될 필요가 없다. 약간의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없앨 때 그는 우주보다 훨씬 더 고귀한 것으로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의 말이다.
박소경 호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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