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희소병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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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9   |  발행일 2017-12-09 제23면   |  수정 2017-12-09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13년간 누워 지낸 20대 여성이 치료 1주일 만에 기적처럼 일어나 걷게 된 사연이 최근 언론에 소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여성은 1999년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아왔지만 알고 보니 뇌성마비가 아니라 세가와병으로 불리는 ‘도파 반응성 근육긴장이상’으로 밝혀졌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생성하지 못해 발병하는 이 질환은 뇌성마비·파킨슨병과 증상이 유사하고 유병률이 200만명당 한명 꼴로 매우 드문 병이다. 소량의 도파민 투여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의학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오진한 것이다. 이번 사례를 두고 오진한 병원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국내 희소병 환우의 현실을 보면 13년만의 확진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희귀질환관리법 2조는 ‘희귀질환이란 환자 수가 2만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으로 정의하고 있다. 종류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6천~7천여 종에 이르고 환자 수도 2억5천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에 의하면 국내에는 1천66종이 등록돼 있으며 약 71만명의 환자가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인기 연예인 중에도 희소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이은하는 쿠싱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실이 지난달 TV를 통해 알려져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쿠싱병은 우리 몸의 호르몬 분비를 관장하는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겨 발생하는 병이다. 대표적인 증상은 살이 찌는 것이지만 단순 비만으로 착각해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데 보통 4~5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배우 문근영도 급성구획증후군으로 네 차례 응급수술을 받았다. 이밖에 배우 신동욱은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 싱어송라이터 윤종신은 크론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말부터 희귀질환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이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진단과 치료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전문치료병원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치료제도 희귀질환의 5%만 개발된 실정이고 그마저 값이 비싸 그림의 떡이다. 환자와 가족의 상처를 달래고 아픔을 나누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아무튼 이번 세가와병 오진 논란이 일회성 화젯거리에 그치지 않고 희소병 환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지원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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