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문재인정부의 경기불감증

  • 조정래
  • |
  • 입력 2017-12-08   |  발행일 2017-12-08 제23면   |  수정 2017-12-08
[조정래 칼럼] 문재인정부의 경기불감증

상존하는 위험은 위험이 아닌가.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는 전쟁의 위협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다. 북한의 생트집과 도발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외국인들은 죽다가 깨어나도 모를 터이다. 이처럼 둔감한 우리의 사고구조 말이다. 한국인의 부동심은 감각에 굳은살이 박히고 박힌 결과다. 웬만해선 끄떡도 않는 불감증이다.

작금 대한민국 사람들의 대범함이 지나쳐 석남석녀(石男石女)의 경지다. 냄비처럼 부르르 끓어오르는 휘발성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데 피시식 식기는 얼마나 순식간에 식어버리는지, 이 부문 세계 신기록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적 상처로 위무되다가 언제 그랬느냔 듯 교통사고 뒤처리쯤으로 쪼그라들다가 그냥 잊힌다. ‘이제 그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상투구는 일반의 의식을 지배하는 강령이다. 지진의 재앙도 ‘중단 없는 전진’의 신화 프레임에 갇혀 후다닥 덮이고 대응책 마련은 흐지부지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안보불감증이 안전불감증으로 전이됐는가.

안보·안전에다 하나 더 추가해야 할 신종 플루는 경기불감증이다. 외환위기 20주년을 맞으면서 불길한 전망이 속출하는데도 우리 정부 여당은 장밋빛 청사진만 내놓는다. ‘설마’ ‘문재인정부가 알아서 잘하겠지’ ‘환란 극복의 저력이 있는데…’ 등 불안을 해소하려는 자위적인 말과 행동이 아슬아슬하게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불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잠꼬대처럼 발화되지 못하거나 소수의견으로 묵살된다. 전문가들의 합리적 의심은 정부 당국자들에 의해 폐기되거나 애써 외면당한다. 미시적 경제지표가 나쁘지 않은 점도 낙관을 부채질한다.

현장은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수성구 황금동 일대 식당가는 자리를 채우지 못한 채 한산하다 못해 겨울 추위에 썰렁함을 더하고, 자영업자를 비롯한 상인과 지역의 중소기업인들은 작금의 경기한파도 문제지만 내년을 더 걱정한다. 호조세를 보이는 경기지표의 경우 반도체 특수효과에 힘입어 일시적으로 부양됐을 뿐 전반적인 현상으로 내다보는 것은 착시(錯視)에 의한 장밋빛 전망에 불과하다고 한다. 실제 지역업체의 절반 이상이 내년 상반기 경기를 어둡게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998년보다 더 심각한 IMF 외환위기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괴담 수준의 우울한 전망을 내놓는 이들도 적지 않다.

경기는 심리라고 한다. 그만큼 경기실사지수에 미치는 심리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얘기. 소비심리의 위축은 더 심각하다. 지난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부자들이 지갑을 열었고 서민들도 금 모으기 등을 통해 너도나도 경제난 극복에 동참했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사뭇 다르다. 서민들은 경기한파에 대비하느라 손을 움츠리고, 부자들은 각자도생·오불관언의 자세를 보일 태세다. 기업가들은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는커녕 언제 손을 털지 시기만 재며 우는 소리 일색이다. 한마디로 가진 자와 경영자들이 정부 여당의 백안시에 삐쳐 돌아앉았다는 것이다.

누항(陋巷)의 민심이 이처럼 흉흉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재인정부의 불감증이다. 반도체와 의료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했다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 경고한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핵심 인사들은 이들의 비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거나 윽박지르고 나선다. 살벌함 속에 관료들은 보신주의에 물들고 전문가들 역시 ‘침묵 모드’로 잠수를 탄다. 정부 여당은 적폐청산에 함몰돼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정치는 불임(不姙)이 된 지 오래다. 자칫 말 한번 잘못 끄집어냈다가 적폐세력으로 몰리는 판국의 비판이 사라진 사회에서 영혼이 있는 정치인과 관료, 전문가는 없고 폴리페서만 우글거린다.

적폐청산이란 과거와의 전쟁은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적폐청산 수사를 올해 안에 끝내겠다고 한 문무일 검찰총장의 선언은 신선하다. 이제 문제는 경제다. 장기집권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 진보정부가 경제에 실패한다면 정권창출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 경제가 문재인정부의 미래를 좌우할 아킬레스건이 되지 않도록 혁신성장의 엔진을 장착해야 한다. 새해 새 정부는 적폐청산보다는 경기불감증에서 깨어나는 걸 국정과제로 삼을 만하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