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의 읽기 세상] 개똥인생 유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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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8   |  발행일 2017-12-08 제22면   |  수정 2017-12-08
자연섭리 인간 판단 초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세상에 떨구고 가는 것에
책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욕심 내면 후환이 뒤따라
[양선규의 읽기 세상] 개똥인생 유람기
대구교육대 국어과 교수

“허, 안 와도 될 데를 그냥 왔다 가네….” 칠순에 접어든 큰 가형(家兄)이 제게 그렇게 말합니다. 인생이 그저 허(虛)하답니다. 작든 크든 제 족적(足跡) 하나 남기고 가는 게 인생인데 그런 최소한의 앞가림도 못하고 고생만 죽자고 하며 살아온 게 꽤나 섭섭하다는 말이었습니다. 현직 대학 교수로 드문드문 신문에 칼럼이라도 싣는 막내동생은 그나마 좀 낫지 않느냐는 뜻도 은연 중에 품고 있었습니다.

“아들딸 잘 키웠고 토끼 같은 손자손녀까지 봤는데 그러시면 섭하지….” 아직 손주를 보지 못한 제가 그렇게 응대했습니다. 나이 들면 자식들, 손주들 잘사는 게 제일 큰 복입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 같은 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것들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등바등 쫓아다니던 그 귀하고 중한 것들이 다 갖다버려야 할 개똥 신세가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물론 철모르고 어린 피란민 신세가 되어 아버지 손을 잡고 이남으로 내려와 평생을 주변인으로 떠돈 1948년생 가형의 심사를 제가 모를 바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요?”라는 질문을 던질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고 천도무친(天道無親)이라,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판단과 감정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주어진 인생 안에서 내가 세상에 떨구고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에 소홀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것 이외의 것에 욕심을 내면 후환이 뒤따릅니다. 누구나 자연 앞에서는 개똥 신세임을 알아야 합니다. 개똥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재미있는 군견병(軍犬兵)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 “개새끼들!” 나는 장갑 낀 손으로 얼굴을 닦아내며 혼자 소리치다 멀쑥이 웃고 만다. 군견들 가운데 예의범절이 고약한 놈들은 견사 안의 나무 침대에다 배설한다. 저녁을 주고 한 시간쯤 지나서 견사장의 말뚝에 묶어두었던 놈들을 견사 안으로 집어넣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는 까닭은 놈들이 밖에다 배설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견사 안에 배설하는 놈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두케. 이놈은 미 7사단에서 온 놈인데 아주 사납다. 나는 두케에게 엄지발가락을 물려 발톱이 빠진 적도 있다. 마린. 이놈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겁도 많고 물똥을 자주 싼다. 물똥이 얼면 치우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라도. 이놈은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군견들이 먹다 남긴 밥을 혼자 처리하는 엄청난 밥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배설량도 엄청나다. 그밖에도 자기네 침대며 침실을 똥칠하는 놈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들의 이름을 적어두었다가 야외 교육을 나가서 한 마리씩 찾아다니며 군기를 세웠다.’ (문형렬 ‘어느 이등병의 편지’)

애견가 시절, 집에서 강아지 배변 훈련시키던 일이 떠오릅니다. 강아지는 창자가 짧습니다. 잔뜩 먹여서 화장실 안에 들여놓으면 이내 똥을 쌉니다. 똥 싼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꺼내줍니다. 서너 번 그리 하면 다음부터는 알아서 화장실에 들어갑니다. 물론 문제아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개 주제에 체면이 강해서 남 안 볼 때 자기 집에서 가장 먼 곳에다 똥을 싸두곤 하는 놈도 있었습니다. 제 책상 아래에다 까만 건전지 같은 개똥을 두어 개씩 감춰두곤 했습니다. 그것 빼고는 다른 식구들과 아주 잘 어울리던 착한 아이였습니다.

착한 우리들, 배변훈련도 잘 받고, 남들과도 안 싸우고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우리들. 우리 모두 자기 똥 눌 자리만 잘 고르면 너나없이 행복합니다. 단, 아무데서나 똥을 싸 발리고 다니는 못된 강아지들에게 턱없이 주인 사랑을 뺏기는 일만 없다면요.

대구교육대 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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