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이념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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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8 07:58  |  수정 2017-12-08 07:58  |  발행일 2017-12-08 제16면
[문화산책] 이념과 영화
고현석<영화감독>

평생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은 심장병이 악화되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의료수당과 실업급여를 받으려 하지만 절차와 과정이 복잡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체제와 시스템의 사각에 놓인 다니엘은 약자들과 함께 연대하고 정부를 대상으로 법정 투쟁을 펼친다. 영국의 좌파 감독 켄 로치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관료주의의 비인간성과 영국 복지제도의 허실을 고발한다.

올해 만 81세가 되는 켄 로치는 2014년에 은퇴를 선언했다가 영국의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분노하며 영화계로 돌아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만들었다. 그는 영국의 하층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약자들 편에 서서 60년 이상을 사회주의적 신념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한편 켄 로치와 더불어 노익장을 과시하는 감독 중에 할리우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 만 87세가 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오랜 공화당 지지자이자 우파 감독으로 정평이 나있다. 최근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연출했고 현역 감독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하고 주연으로 출연한 ‘그랜 토리노’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노병이 주인공이다. 이 노병은 미국의 국민차 ‘그랜 토리노’를 애지중지하고 매일 성조기를 현관에 걸어놓는 미국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다. 이웃에 사는 동양인 이민자 가족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그였지만 어느 날 이웃집 소년이 갱단의 협박으로 자신의 차를 훔치려다 실패한 것을 계기로 소년과 친해지게 된다. 갱단이 소년의 가족을 해코지하자 노병은 이들을 지키기 위해 직접 나서게 된다. 이 영화의 엔딩에서 노병은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갱단을 응징하는데 이 노병이 보여주는 희생과 엄중한 책임의식은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이 두 감독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다. 두 거장은 각각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진단하며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이상적 가치를 작품 속에 담아낸다. 켄 로치는 불완전하고 모순된 체제 안에서 고통 받는 약자들을 이야기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체제 안에서 개인이 가져야 할 원칙, 책임감, 약자에 대한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감독이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건 그들의 영화 중심에 이념이 아니라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고현석<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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