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포항시장 16만원과 국회의원 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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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7   |  발행일 2017-12-07 제35면   |  수정 2017-12-07
[영남타워] 포항시장 16만원과 국회의원 10만원
변종현 경북부장

하늘이 무너질까봐, 땅이 꺼질까봐 침식(寢食)을 폐할 정도로 불안에 떨었다는 중국 기(杞)나라 사람의 걱정, 즉 기우(杞憂)에 대한 우화는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가(道家) 사상을 담은 중국 고전 ‘열자(列子)’ 천서편(天瑞篇)에 나오는 이 우화 뒤에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우 이야기 끝에는 장려자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는 “지나치다 할 수는 있으나 하늘과 땅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것 또한 옳은 것은 못 된다”고 강조했다.

운석이 떨어지거나 오존층에 구멍이 나는 것은 어쩌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일이고, 지진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땅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쓸데없이 불안해하고 속을 태운다며 조롱의 대상이 됐던 기나라 사람의 걱정은 실은 인류 존망과 직결된 실재적(實在的)이고 현재적(顯在的)인 위험이었던 셈이다. 기우를 반드시 기우라 할 수 없다한 옛 사람의 우주관과 지질학적 통찰이 그저 놀랍다.

포항지진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 차츰 안정을 되찾고는 있지만 포항시민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지인이 들려준 얘기로는 조그마한 충돌음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이가 적지 않다. 타 지역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공포와의 동거’가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조속한 복구와 함께 심리치료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 이러한 때 포항을 도우려는 온정이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포항시민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지진 엿새 되던 지난달 20일 이강덕 포항시장이 1억16만원을 지진피해 성금으로 기탁해 화제가 됐다. 재난 발생지역 단체장으로서 당연하다 할 수 있겠으나 기탁 액수가 뜻밖에 커 당연하다고만 볼 수 없다. 어쨌든 그 큰 액수에 놀랐고 월급을 모은 돈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랐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따로 있다. 바로 1억16만원 중의 ‘16만원’이다. 1억이라는 상징적 단위가 아니라 16만원이라는 우수리가 묘한 감동을 준다. 줄 수 있는 모든 걸 내놓고 싶은 마음이 읽혀서다.

많고 적음이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씁쓸한 기탁도 있다. 국회의원들이 포항을 돕기 위해 내놓은 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처음 이들이 1인당 10만원씩 갹출한다고 했을 때 귀를 의심했다. 액수에 놀랐고 액수를 정한 배경에 또 한 번 놀랐다. 한 의원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의원들이 성의를 다하기 위해 갹출하기로 했고, 페루 홍수 때 국제지원 선례가 있었고, 자유한국당이 제안했다고 한다. 이를 달리 풀어보면 성의를 다한 금액이 10만원이고, 일률적으로 갹출해 각 의원의 부담을 덜어줬고, 해외 재난 때처럼 포항에도 똑같이 적용했고, TK가 정치텃밭인 만큼 자유한국당이 도리를 다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참으로 후안무치가 아닐 수 없다.

한국 국회의원의 연봉은 자랑스럽게도(?) 세계 톱3다. 연봉만 1억3천796만원(2016년 기준)이며, 8명의 보좌관과 1명의 인턴을 거느리는데 4억원 이상을 지급받는다. 그 외 의정활동경비, 사무실 운영비, 공공요금, 입법 및 정책 개발비 등을 합치면 총 7억원에 육박한다. 이처럼 국민 혈세로 초호화 혜택을 누리는 그런 그들이 정작 국민이 어려울 때 내놓은 건 1인당 10만원이다. 그들에게서 ‘한없는 가벼움’을 느끼는 건 혼자만의 생각일까.

요즘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는 고액 기부자들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알게 하려고 애쓴다. 나눔의 즐거움을 알기에 남들도 느낄 수 있도록 나눔 바이러스를 전파하려는 뜻이다. 이번 국회의원들의 10만원 갹출은 오른손이 모르게 했어야 했다. 부끄러운 줄 안다면 말이다. 워런 버핏은 “시장경제는 나 같은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주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기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이여! 현대정치(간접민주주의)는 당신 같은 사람에게도 금배지를 달아 주지만 국민에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심판이 필요하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 했지만, 재난은 국가가 막아줘야 하고, 고난은 정치인이 함께해야 한다.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 국민과 함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것은 기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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