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전직 대구시장 대 부산시장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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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6   |  발행일 2017-12-06 제31면   |  수정 2017-12-06
[박재일 칼럼] 전직 대구시장 대 부산시장

지난달 29일 지역언론인 모임인 아시아포럼21 초청 토론회에 온 권영진 대구시장이 인상적인 발언을 했다. 이제 3년 남짓 시장직을 수행한 그는 10년 20년 길게 보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를 설명했다. 도시철도 3호선, 테크노폴리스 연결도로, 동대구역 광장과 복합환승센터, 신세계백화점 진출, 한국뇌연구원을 비롯한 대구의 굵직한 인프라가 재임 중 속속 완성됐지만, 이는 모두 전임 시장들이 시작했다는 것. 그래서 권영진이 잘했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이들 도시 인프라는 전임 시장 시절부터 추진됐고, 권 시장은 그 화려한 마무리에 숟가락 하나 얹은 셈인지도 모른다.

1995년 이래 직선제로 뽑은 전직 대구시장은 모두 3명이다. 문희갑, 조해녕, 김범일 시장이다. 냉정하게 말해 재임 시절에는 그렇게 열광적인 시민 지지를 받은 것도 아니다. 권 시장 말대로 현직에서는 그 평가가 가혹했다.

그래도 곰곰이 되새겨보면 업적이 있다. 문 시장의 1천만 그루 나무심기는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벤치마킹된 사례다. 무엇보다 나는 그가 추진한 2·28기념중앙공원을 업적으로 꼽고 싶다. 필자가 다닌 모교 중앙초등학교 부지인데, 문 시장은 학교에 연접한 도로의 건물까지 확 걷어내고 공원을 만들었다. 총부지만 당시 시가로 1천억원 이상이었다. 그때 공원을 만들지 않았다면 대구 도심은 훨씬 삭막했을 것이다.

문 시장에 이은 조해녕 전 시장은 앞서 관선으로 한 차례 대구시장을 역임했다. 내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머리가 비상하고, 농담을 즐기는 그는 취임 1년도 안 된 2003년 2월 중앙로 지하철 화재참사의 유탄을 맞으며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정설이다. 불운했다. 그가 김범일을 적극 천거하고 시장직을 떠난 배경이기도 하다.

김 시장은 권 시장이 언급한 인프라의 상당 부분을 구상한 인물이다. 이에 보태 세계 3대 스포츠제전이라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직접 유치해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대구 물산업과 국가산업단지의 밑그림을 확실히 그렸다.

전임 시장은 모두 경북고를 졸업했다. 행정고시를 거친 관료 출신이란 점도 똑같다.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청와대 경제수석, 청장, 장관에다 국회의원까지. 공히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다. 흔히 말하는 서울서 출세한 뒤 대구에 온 전형적인 ‘서울TK’라고 할까.

퇴임 후 전직 대구시장들이 빛나는 이유는 이 지점에 있다. 3명의 전직 시장은 모두 대구에서 살고 있다. 정치는 대구에서, 생활은 서울에서란 서울TK의 전형적인 인생경로와는 다르다. 달성 본가에 거처하는 문 전 시장은 강연도 하고, 현직 시장에게 줄기차게 ‘잔소리’도 해 왔다. 조 전 시장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을 두 차례 역임하면서 대구의 봉사정신을 길러내는 데 앞장섰다. 김 전 시장도 여전히 담백하게 대구생활을 즐긴다. 국회의원 해보라고 해도 “노”라고 답한다.

그러고 보니 이들 시장의 재임 시절, 유독 부산과 대립관계가 많았다. 문 시장에게는 대구 국가산업단지(위천)를 놓고 부산에서 태클을 걸었다. 이후 영남권신공항 이슈도 마찬가지였다. 전임 부산시장들의 면면이 떠오르는 이유다.

안상영 전 부산시장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출신으로 부산으로 와서 야심차게 시정을 이끌었지만, 재선 재임 도중 독직(瀆職)사건으로 구속됐다. 좀 안된 얘기지만 무죄를 주장하다 부산구치소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야당 시장이란 정치적 고립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어 3선으로 10년간 부산을 이끈 인물이 허남식 시장인데, 그는 퇴임 후 엘시티 사건에 연루돼 1심에서 3년형을 받았고, 현재 불구속 상태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어쨌든 부산시장과 비교해서 유감이지만 전직 대구시장들이 고향을 지키는 것은 작지 않은 가치다. 지키는 것은 보수(保守)의 핵심이념이다. 진정한 보수의 아성이 대구라면 그것과도 어울린다. 원로들이 머물며 후진들에게 잔소리도 하고, 또 과거의 시행착오를 가감없이 들려준다면 도시를 더 윤택하게 할 것이다. 퇴임 후 대구를 지키는 전직 시장들을 존경한다는 권 시장의 발언에 한 표를 던진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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