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뷔페 고수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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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5   |  발행일 2017-12-05 제31면   |  수정 2017-12-05

해마다 이맘때면 결혼 청첩장이 많이 온다. 봄·여름보다 가을·겨울이 결혼 시즌으로 각광받는 것은 시간적·경제적으로 여유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들 무슨 호텔 같은 데서 하는 결혼식은 판박이로 뻔하고 복잡하다. 그 옛날 너른 동네 공터나 학교 운동장, 공원에서 하루종일 먹고 놀던 그런 잔치는 이제 보기 어려운 시대가 돼 버렸다. 더구나 예식도 보는 둥 마는 둥 빨리 점심 때우고 오후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 저마다 바쁘기 그지없다. 그래서 호텔 뷔페는 점심시간 여러 팀의 하객들로 북새통이 된다. 차려놓은 음식들은 육해공군이 망라된 진수성찬이지만 코너마다 줄지어 서서 한두 점씩 담아야 한다. 그보다 미리 자리를 잡아두지 않으면 편히 앉아 먹기도 간단치 않다. 대충 이것저것 눈여겨보다가 대여섯 가지 정도만 접시에 담아와서 먹는데도 진땀이 난다. 그럴싸한 외관에 혹해 검증 안 된 요리들을 많이 담아왔다가 남기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먹는 고역도 겪는다. 이게 뷔페 식사에 서툰 나 같은 사람들의 엇비슷한 모습일 게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해 보면 뷔페 식당에서도 고수(高手)와 하수(下手) 간 내공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중국식이든 한식이든 각자 식성에 따라 음식을 고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먼저 젓가락이 가는 게 당연하다. 대체로 초밥·생선회·육회 등 해산물과 고급 재료를 선호하는 게 고수 반열에 드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자주 실망하게 된다. 해물 초밥의 경우 덧댄 해물은 작고 뭉쳐진 밥의 양만 많다. 제대로 된 일식 초밥집과 정반대여서 비교된다. 귀한 식재료인 육회나 문어 같은 것도 기대와는 딴판인 맛이다. 이런 식이니 뷔페 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확 떨어지기 일쑤다.

얼마 전 후배 아들 결혼식장에 갔다가 시행착오만 반복해온 나의 뷔페 식사 방식에 대해 깨치게 됐다. 소·돼지 고기를 파는 음식점을 오래 경영한 지인을 오랜만에 만나 동석하면서다. 그는 초밥·육회·해산물로 채워진 내 접시를 보고 딱하다는 듯 한마디 했다. 그가 “여기서 그런 것 드시면 하수입니다. 고수들은 이런 것 먹습니다”라며 색다른 음식을 추천했다. 그날 두 그릇이나 먹은 소 도가니탕은 겉보기와는 달리 맛이 아주 좋았고 영양학적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많은 수고로 내공이 쌓여야 고수가 된다고 했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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