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슬로라이프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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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4   |  발행일 2017-12-04 제31면   |  수정 2017-12-04

대학 졸업 후 몇 년째 취직을 못한 초등학교 동창생 둘이 길을 가다가 마주쳤다. 초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던 그들은 못본지 꽤 오래됐으나 풍문으로 들어 상대의 처지는 알고 있는 터였다. 동창 A “정말 오랜만이네. 잘 지내는가? 근데 연락도 통 없고….” 동창 B “미안하네. 그동안 바빠서…그런 자네야말로 친구 모임에 한 번도 안나오고 너무 무심한 것 아닌가.” 동창 A “나도 너무 바쁘다보니 신경을 못썼네 그려.”

이런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만하다. 하지만 대놓고 비웃기는 어렵다. 백수든 아니든 우리 주변에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바쁘다고 여길 수도 있고, 아니면 남들 눈에 그렇게 보이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라면 실제 바쁜 정도는 오십보백보일 텐데, 늘 시간에 쫓긴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바쁜 게 나쁜 것은 아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나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단지 먹고살기 위해 바쁘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불편한 내면을 숨기거나 행동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쓴다. 또한 핑곗거리로도 종종 활용한다. 얼마 전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어떤 수필가의 글이 와 닿는다. “언제부턴가 바쁘다는 말은 상용어가 됐다. 하지만 당신도 알고 나도 안다. 그 말이 주로 무관심과 거절의 점잖은 표현이라는 사실을. 그 상대에게는 자신의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반면 자기 이익이 조금이라도 걸린 일은 바쁘다고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요즘 들어 바쁜 게 미덕이 된 사회 분위기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계 일본인 쓰지 신이치는 슬로라이프(slow life)란 말을 창안한 느리게 살기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경쟁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과장된 공포가 현대인을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물질적 풍요에 대한 집착 때문에 급박하게 보내는 삶의 종착지는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옳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의해 좌우된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장거리 도보 여행이다. 앞만 보고 뛰다보면 결국 지쳐 쓰러질 수밖에 없다. 때때로 삶의 쉼표가 필요하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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